상하이 임정청사 어떻게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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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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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재개관한 상하이 임정청사 2층의 김구선생집무실.[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지난 4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재개관한 가운데 한국인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 곳을 속속 찾고 있다. 지난 6월말 시작된 재개관공사를 통해 임정청사는 노후 전시물이 교체되고, 노후한 시설도 개선됐으며, 청사 주변환경도 정비됐다고 중국신문사가 6일 전했다.

상하이 황푸(黃浦)구 마당(馬當)로 306로 4호에 위치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1920년대 건축된 석고문(石庫門) 형식의 이롱주택(연립주택)이다. 100여년이 경과한 이런 형태의 건축물은 현대 상하이에 몇 남지 않았다.

재개관한 임정청사는 1층 회의실과 주방, 2층 집무실과 숙소, 3층 제1·2전시실로 구성됐다. 1층 회의실과 부엌, 2층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 침실 등은 예전과 바뀐 게 별로 없다. 3층 전시실 자료가 대폭 풍부해진 것이 특징이다.

임시의정원 손정도 의장의 ‘임시정부 외교활동 성명서’, 한인독립운동단체의 ‘상하이 애국부인회의 성명서’ 등도 새로 추가됐다. 또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현장을 러시아 기자가 촬영한 동영상도 새로 전시됐다. 한국광복군 활동을 담은 사진들도 추가됐다. 중국 ‘신화일보’에 실렸던 김구 선생의 글 ‘중국 항전과 한국독립’도 포함됐다.

중국이 상하이와 충칭(重慶)의 임정 활동을 지원했었다는 사실도 새로 전시됐다. 중국 국민당 정부가 1940년 무렵부터 광복 때까지 매달 6만∼300만 원씩 임정에 활동비를 지원한 사실과 백범이 광복 직후 환국할 때 장제스(蔣介石)가 20만 달러를 제공한 사실이 새로이 추가됐다. 공산당은 아니지만 국민당 정부가 임정에 지원한 금액을 자세히 적시했다. 청사 측은 기존 단순한 전시를 넘어 입체적으로 바꿨고 임시정부 활동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개선했다고 밝혔다.

임시정부는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수차례 옮겨 다녔지만, 이 건물에서는 1926년 3월부터 1932년 5월까지 비교적 오랜기간 사용했다. 상하이를 떠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저우(杭州, 1932), 전장(鎭江, 1935), 창사(長沙, 1937), 광저우(廣州, 1938), 류저우(柳州, 1938), 치장(綦江, 1939), 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했다. 중국에는 상하이 이외에도 항저우, 창사, 충칭 지역 등에서 임시정부 청사 원형이 복원되고 전시실도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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