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배수의 진을 쳤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재신임 카드’를 꺼내 들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실체적 패권주의’ 논란에 휘말렸던 친노(친노무현)그룹의 좌장인 문 대표가 비노(비노무현)그룹의 흔들기가 노골화되자,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범주류인 정세균 상임고문이 이날 사실상 문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한 데다,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상수인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안철수 전 공동대표에게 신당 합류를 요청, 당 원심력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문 대표가 ‘질서 있는 퇴각이냐, 버티기냐’의 중대 기로에 봉착한 셈이다.
◆文 “혁신 부결시 재신임”…혁신안 격론 끝 통과
문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만약 혁신안이 끝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격론 끝에 ‘100% 국민공천제’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이 당무위원회를 통과한 직후다.
이는 범야권 안팎에서 ‘천정배 신당’을 비롯해 ‘박주선(새정치연합 의원) 신당’ 등 7∼8개의 분당·신당 그룹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자,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당 혁신안의 최종 관문인 오는 16일 중앙위 의결 때 비노그룹이 대규모 토론회를 예고한 점을 감안하면, 당의 원심력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혁신안’이 부결될 경우 문 대표 스스로 당내 구심력을 급속히 잃을 수 있는 만큼, 파국을 막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얘기다.
문 대표는 이날 탈당설을 흘리는 당내 비주류 진영을 향해, “심각한 해당 행위”라며 “당을 지키고 기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재신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날을 세웠다. 재신임 절차에 대해선 “기초선거 정당공천 결정을 할 때와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이 경우 ‘김한길·안철수’ 체제 시절 실시된 ‘전 당원 대상 자동응답전화(ARS) 조사 방식’이 유력할 전망이다.
◆명분 잃은 文의 승부수…차기 대권 걸림돌
문 대표의 재신임 승부수로 일단 혁신안의 중앙위 의결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문 대표는 혁신안 통과 이후 “재창당에 가까운 뉴파티(new party)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18대 대선 당시 야권 안팎에서 제기된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이나 정 상임고문의 ‘연석회의 구성’ 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측 가능한 비전 제시로 당원 원심력을 꺾을지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특히 비노그룹의 문제 제기는 ‘친노 패권주의’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천 룰 등의 제도개혁보다는 ‘특정 계파의 당 장악’ 등의 정치 문화와 관행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비노계 내부에선 문 대표의 승부수를 놓고 혁신안의 중앙위 가결 때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림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비주류인 안 전 공동대표는 문 대표의 재신임 제안에 대해 “재신임 운운은 부적절하다”며 “실망스럽다”고 비판했고, 주승용 최고위원도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한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 대표의 승부수가 비노그룹의 요구가 엇박자를 내면서 ‘명분’도 ‘실익’도 희석됐다는 얘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당 대표가 제도 개혁 문제를 추인해 달라고 ‘직’을 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혁신안은 통과하겠지만, 당의 원심력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천정배 신당에 창당 명분을 내어줄 경우 내년 총선 때 1∼2% 승부인 수도권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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