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에 맞춰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복리후생 정책도 변화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을 통해 사측에 요구하는 사례를 들여다보면 시대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일부 조합원들의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용 세습’이다. 부모가 장기간 근속해 회사에 기여를 했다면, 부모들을 잘 아는 회사 경영진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채용의 기회를 줄 수 는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암묵적 합의가 되는 최소한의 선에서 그쳐야지, 단협상 조항으로 강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취업의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하는 노조들이 의외로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이 자동차·호학·정유·조선·은행 등 주요 1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14일 발표한 단협 실태 상황을 살펴보면, 대상 기업 가운데 9개 기업의 단협에 신규 채용을 할 때 정년퇴직한 조합원이나 장기 근속한 조합원의 자녀를 우대하거나, 동일한 조건인 경우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처음으로 이를 주장한 뒤 많은 업종 업체 노조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화학업종 E사와 정유업종 F사, G사, 조선업종 H사와 I사 노조도 ‘일부 조건이 붙긴 하지만 결국은 조합원의 자녀들의 채용을 우선해야한다는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달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잡코리아 설문 기준)을 대상으로 노사 간 단체 협약을 분석한 결과 총 11개 기업에서 고용 세습 조항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11개 기업에는 한국GM과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에쓰오일(S-Oil) 울산 공장, 현대위아, SK하이닉스 청주 공장 등이 포함됐다.
고용정책기본법은 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위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또는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노동계 인사들이다. 그런데 노조는 이를 스스로 깨고 있는 것이다.
고용세습과 함께 노조가 주장하는 억지조항 가운데 하나가 조합원들의 중·고등·대학생 자녀의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전경련 조사 결과 8개 기업 단협에 조합원 자녀 전원의 학비를 지원해주는 규정을 담고 있으며, 이 가운데 6개사는 중·고등·대학교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자동차 B사와 C사는 조합원 자녀 중·고등학교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다. 대학교 등록금이 1학기당 350만원이라고 가정한다면, 3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조합원은 1년에 2100만원 가까운 복리후생을 받는 셈이다.
다시 말해, 조합원의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학비를 회사가 전액 부담하고 난 뒤, 취업까지 시켜 월급까지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항은 조합원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는 점을 봐야 한다. 취업연령이 늦춰지면서 결혼 기간도 그만큼 지연되면서 대부분의 직원들은 입사 3년 이상이 되어도 중·고등·대학생 자녀를 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말해 지금 취업한 직원들은 학비 지원을 이렇게 해줘도 수혜를 받을 때에는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에 의미가 와닿지 않다. 상당수 젊은 노조 조합원들은 “학비 지원은 우리보다 지금 윗자리를 차지한 나이 많은 조합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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