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도’ 송강호 “왕이나 배우나 외롭기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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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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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열연한 배우 송강호가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지난 2013년 ‘관상’과 관련해 송강호(48)를 인터뷰를 하던 중 “많은 역할들을 했는데 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왕(王) 역할은 어떻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송강호는 “왕 역할도 좋지요. 송강호가 연기하는 왕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송강호는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사도’(제작 타이거픽쳐스)에서 조선시대 최장수 왕 영조를 연기했다.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영화다.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까지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영조’와 ‘사도’를 둘러싼 가족들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밀도 있게 표현해내며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선사한다. 소지섭이 정조 역으로 특별출연한다.

16일 오후,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2년만에 송강호를 만났다. ‘관상’에 이은 사극이지만 소시민 관상쟁이에서 왕으로 격상한 송강호에게 소감을 물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열연한 배우 송강호가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왕 역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왕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왕은 저럴 것이다. 왕의 말투는 저럴 것이다’라는 거죠. 그걸 갑갑하게 느껴오던 차에 ‘사도’의 시나리오를 보게 됐고, 창조된 영조가 아니라 실제 사료에 적힌 왕을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록을 보면 영조대왕께서 사도세자에게 ‘1년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드느냐’고 묻자 ‘두어번 듭니다’라는 대화를 나눈 게 나와요. 사도세자의 스승이 ‘그런 의미가 아니옵고’라고 하는 부분도 있죠. 왕은 항상 근엄하고 지존의 틀에 갇혀 있어야 할까요? 왕도 아버지이고, 아들이 공부를 안 하면 시킬 수 있잖아요. 사석에서 농담도 할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죠. 역사에 나와 있습니다. 왕도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거죠. 사실적인 부분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어 굉장히 좋았어요. ‘만들어진 영조’는 그럴 수 없을 텐데 실제로 그러셨으니까요.”

‘사도’를 본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이 됐다. 왜냐하면 송강호가 영조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생소한 왕 연기였지만 송강호이기에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특히 영조가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 앞에서 하는 긴 대사는 ‘왕’ 영조가 아닌 ‘아버지’ 이금(李昑)이었다. 손자 정조와 함께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끈 왕의 이면이었다. 앞서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과 달랐다. 사도세자가 미치광이로 평가받았던 이유의 배경에는 영조가 있었고, 아들이 죽고 난 뒤에 후회하는 영조는 대중이 알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노회한 영조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영화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보이려면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준익 감독이나 송강호의 생각은 달랐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열연한 배우 송강호가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감독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감정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늙은 영조가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하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사보다 감정의 전달이 중요했다”는 송강호. 이준익 감독은 그 장면에 대해 “배우는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는 연기가 가장 좋은데 그 때 송강호가 그랬다. 의식적으로 외운 대사와 영조라는 캐릭터에 깊숙이 빠진 송강호의 무의식이 만난 연기였다. 십여번 촬영을 했지만 지금 버전인 첫 번째 컷을 사용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하하. 이준익 감독님이 말씀을 재미있게 잘하시죠. 정말 좋았어요. 제가 데뷔 20년차인데 처음 만났지만 얘기는 익히 들어왔죠. 스타일에 대해서도 들었지만 ‘충무로에서 인격적으로 굉장한 존경을 받는 분’이라고도 하죠. 유쾌하시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하신 분이세요. 배우나 스태프들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죠. 첫 만남 때 그러시더라고요. ‘결과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그게 철학이신 것 같아요.”

시중에 나와 있는 사료들 중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섭렵한 송강호는 왕에 대해 “고독한 느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사도’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은 영조”라면서 “군주이면서 아비인 입장에서 아들을 제어하지 못한 고통도 있었을 것이다. 왕이라는 존재가 다 지켜만 보고 위로하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 같다. 그게 배우하고도 비슷하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수십명이 지켜보기만 한다. 배우들은 그 때를 ‘가장 외롭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열연한 배우 송강호가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영조를 연기한 입장에서, 아들 준평 군을 두고 있는 송강호에게 ‘사도’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저도 아버지이다 보니 영조대왕이 가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죠. 어떤 아비나 자식이 잘되길 바라니까요. 어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길 바라는 공통점 같은 거죠. 제가 영조처럼 혹독한 압박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영조와 나의 공통점은 소통의 부재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웃음). 반성이 되더라고요.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비와 자식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잖아요. 제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하게 됐어요. 이런 마음은 관객들도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명품배우 송강호를 상대로 부족함없이 연기한 유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유아인은 대단한 배우”라고 말문을 열었다.

“원래 광기에 찬 광인을 연기할 때 배우 입장에서 유혹을 많이 받게 돼요. 테크닉적으로 연기하려는 거죠. 우리는 숱한 광인의 모습을 스크린이나 드라마를 통해 봐왔기 때문에 광기를 표현하는 ‘기술’같은 게 있다고 보죠. 비슷한 광인을 연기하게 되는 유혹이 있는데, 유아인은 스스로 그걸 경계를 하고 오롯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쩔 때는 정제되지 않은 느낌도 있지만 그 나이대에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죠. 지금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대견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배우죠.”

말이 필요 없는 송강호와 요즘 제일 핫한 유아인에, 문근영(혜경궁 홍씨 역), 전혜진(영빈 역), 김해숙(인원왕후 역), 박원상(홍봉한 역), 박소담(내인 문소원 역), 최민철(채재공 역), 이대연(김상로 역) 강성해(김한구 역), 최덕문(홍인한 역), 정석용(홍내관 역), 조승연(이천보 역), 이광일(민백상), 정찬훈(이후 역), 차순배(박내관 역), 김민규(김귀주 역), 최지웅(내금위장 역), 이지완(별감대장 역), 정해균(소경박수), 이신우 도광원(보조박수), 윤사비나 조윤정(비구니 역), 손덕기(홍낙인 역), 아역 안정우(4세 사도), 엄지성(10세 사도), 세손(이효제), 신수연(어린 혜경궁), 신비(어린 화완옹주) 여기에 정조로 특별출연한 소지섭까지 모두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한 ‘사도’는 16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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