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정치적 상상력은 죽은 지 오래다. 치열한 체제 논쟁도 없다. 수권정당·대안정당을 위한 비전도 부족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주소다. 60년 전통성은 간데없이 앙상한 깃발만이 남았다. 범주류가 야심 차게 추진한 60년 야당 역사 복원 작업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의 불참으로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1987년 민주세력 분열상이 지금도 야권을 옥죄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의지로 낙관할 수밖에 없다. 반(反)파시즘을 주창한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의 말 그대로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해야 한다. ‘잔인한 희망고문’이다. 야권의 정치가 잔인함으로 치환됐다. 아직도 밤에 떠도는 국민들의 노랫말이 들리는가.
문병호(재선·인천 부평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인터뷰는 이 물음에서 시작했다. ‘김상곤 혁신안’이 중대한 갈림길 섰던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내 비주류인 문 의원을 만났다. 문 의원은 인터뷰 초반부터 “민심이 사납다”며 혁신과 통합을 주장했다.
특히 문 의원은 “호남 민심이 크게 하락했다”며 “당 전체가 친노·비노 프레임 갇혔다. 그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재인 대표를 향해선 “계파 수장으로 인식돼 있다”며 통합적 리더십을 주문했다.
그는 문 대표가 한때 재신임 투표 강행 의지를 보인 데 대해선 “사실상 ‘한판 붙어보자’며 싸움을 건 것”이라고 힐난했다. 앞서 문 대표는 여론조사와 권리당원 ARS를 각각 50%씩 합산하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묻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시험 치르는 사람이 시험 문제를 낸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의원은 천정배 신당 등 야권발(發) 정계개편과 관련해 “도저히 새정치연합으로는 총선 전망이 없으면, 새로운 정치흐름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를 향해 천정배 무소속 의원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을 만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내년 총선, 4·29 재보선보다 더 비관적”
문 의원은 “지역 민심이 싸늘하다”고 운을 뗐다. 의외였다. 문 의원의 지역구는 전통적인 야도(野都)인 인천 부평이다. 노동조직이 견고한 이 지역에서조차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곧 ‘수도권 전패’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어 “국회나 정치권이 국민의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먹고사는 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에 대한 불만이 많다. 정치권이 일은 하지 않고 만날 싸움만 하면서 민생의 고통을 외면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의원은 “20대 총선 전망이 지난 4·29 재·보궐선거 때보다 더 비관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체제’로 치른 첫 번째 선거였던 당시 재·보선에서 ‘야권 텃밭’인 광주를 천 의원에게 내주면서 0패를 당했다. 문 의원은 당이 지리멸렬한 이유에 대해 “혁신도 통합도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것은 문 대표의 개인적인 옳고 그름 등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문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야권 대표나 당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이미지가 아니라, 친노 수장처럼 돼 있다”며 “일종의 친노·비노 프레임에 갇혀있다 보니까 문 대표가 야권 대통합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文, 야권 대통합 위해 대승적 결단 필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친노 2선 후퇴 등 백의종군이 답이냐’라고. 이에 대해 문 의원은 “친노 이미지의 문 대표가 당을 이끄는 이상, 총선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의견이 많다”며 “야권 대통합을 위해서 당 대표가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라고 전했다.
다만 “문 대표를 몰아내듯이 (쫓아내면) 안 된다. 대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고민하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단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제는 대표 몫이니, (그 이상은) 제가 얘기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문 대표가 야권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친노그룹의 역할을 축소하는 백의종군 등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 의원은 계파 갈등의 해결책으로 ‘프레임 전환’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당 전체가 친노·비노 프레임에 갇히면서 모든 정치행위를 이분화하고 있다”며 “친노·비노 프레임을 극복하려면 ‘새정치 대 구태정치’로 프레임을 바꾸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프레임 전환을 못 하면서 그 프레임이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파 패권주의 문제가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냐’라고 묻자 “당내 문화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문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양쪽(친노와 호남)의 큰 흐름이 형성됐고, 지금까지 경쟁과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며 “새누리당과는 달리, 우리 당은 수평적 네트워크다. 비교적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하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대립과 갈등이 반복된다. 나만 옳다는 독선을 버려야만 당이 화합하고 안정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경 노선에 대해 쓴소리도 던졌다. 문 의원은 “18대 대선이나, 4·29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중도층을 흡수하지 못한 결과”라며 “당 노선 자체가 왼쪽으로 쏠리다 보니까 중도 표를 끌어오는 데 한계가 있다. 중도개혁 정당을 지향하되, 아래로 가야 한다. 이 노선 정립으로 운동권 정당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대선평가보고서에 다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文 재신임 투표 제안, 갈등 표면화”
인터뷰 중반 ‘재신임 정국’에 대한 질문이 시작됐다. 문 의원은 “문 대표가 혁신안 통과에 신임 문제를 건 거나,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당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려면 반대편을 아우르는 협상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재신임 투표 제안이 또 다른 논란을 낳지 않았느냐. 정치판에서 표 대결을 강행하면, 갈등은 표면화될 수밖에 없다. 가능한 표 대결을 하지 않고 토론과 타협을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관례”라며 “당을 통합하고 당원을 결속할 책무를 가진 대표가 당 갈등을 확대하는 일을 했다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문 의원은 “재신임 투표 제안 자체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룰을 당사자가 정하는 것은 더 잘 못된 것”이라며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명분도 없다. 이는 당원들의 자존심을 꺾고 당을 존중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당 통합과 혁신을 위해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문 대표 취임 후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할 자리가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 의원은 인터뷰 이후 소집된 중앙위 도중 기명투표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문 의원은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무기명투표를 했을 것”이라며 당 주류를 비난했다.
◆“野 신당 영향력, 이번엔 다를 수 있다”
문 의원은 ‘혁신위’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하자 “실패했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어 “혁신위의 핵심 의제는 낡은 진보 청산과 당 패권주의 타파였는데, 그런 것은 다루지 않고 최고위나 사무총장직 폐지 등 시스템만 건드린 ‘변죽만 올린 혁신안’이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는 “4·29 재·보선 패배 이후 혁신위가 출범했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혁신하지 못했다”며 “당 지지율은 하락했고, 호남 민심은 더 떠났다. 혁신위가 실패했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힐난했다.
문 의원은 ‘천정배 신당’ 등 야권발 정계개편에 대해선 “신당 출현은 현실화됐지만, 규모나 영향력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과거 총선 때도 신당이 나왔다. 하지만 영향력이 없어 변수가 안 됐다. 당 의원들도 새정치연합 중심으로 혁신과 통합해서 총선을 치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의 ‘혁신’과 ‘민심 회복’이 야권발 정계개편의 중요 변수”라며 “우리 당의 혁신과 통합이 비관적이면 신당론이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당 원심력을 약화하는 방안으로 ‘야권 대통합’을 꼽았다. 그는 “문 대표가 혁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통합을 위해 본인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당후사’ 정신으로 임한다면, 천 의원과 정 전 장관 등을 안 만날 이유도 못 만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 문 의원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지역주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앞둔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했다.
문 의원은 “구도심 지역인 부평의 경기가 좋고 일자리도 부족해서 지역주민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은 기간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좀 더 매진할 생각”이라며 “최단기적인 해결과제는 ‘부평 미군기지(캠프마켓) 반환 후 활용’이다. 15만평 부지를 잘 만들어서 부평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명소를 만들겠다. 경기 불황으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 위기를 슬기롭게 같이 넘자. 저부터 노력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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