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월급쟁이보다는 사업을 하는 것이 돈을 모으기에 수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금형 설계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업계 전문가들 속에서 이 분야의 일인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이 역시 사업에 눈을 뜨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처음엔 샐러드 배달사업을 했다. 미(美)를 중시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사업이 망하고 나서야 알았어요. 여성들이 고기를 참 좋아한단 걸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만 해도 가슴 쓰린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모은 돈을 사업 실패로 한 번에 날린 후, 무일푼으로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텔 청소부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숙식이 제공된 덕분에 사업자금을 좀 더 빨리 모을 수 있었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새로운 사업을 계획했다. 바로 야놀자의 전신 모텔투어다.
운도 좋았다. 모텔 정보 카페인 ‘모텔투어(모투)’ 운영자가 카페를 인수해줄 것을 요청해 오면서 숙박 관련 사업과 연을 맺게 됐다.
당시 ‘모텔가이드(모가)’ ‘호텔365’에 이어 가입자가 세 번째로 많은 카페였다.
그는 서울 시내 50여개 모텔 내부 사진을 직접 찍어 올리고 회원들 질문에도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며 카페 운영에 열의를 쏟았다.
회원에겐 모텔비 할인, 체크아웃 시간 연장 등의 혜택도 제공하도록 모텔 업주들과 제휴도 맺었다.
어느새 회원 수가 7만여명에 이르던 모가를 따라잡았고 모텔 광고 유료화 전환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 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성공할 날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사업이란 것이 그가 계획대로 이끌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청년 창업가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사업 노하우를 익히도록 하는 강좌도 보편화됐지만 그가 사업가의 걷기 시작했던 당시에는 스스로 넘어지고 부딪히며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만 했다.
세무의 '세'자도 모르고 시작한 사업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부가세 환급방법, 상표권 획득법 등을 몰라 쩔쩔매던 시절, 급기야는 경쟁사에 모텔투어 상표권을 뺏기며 또 다른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하지 않았던가. 초보 사업가 이수진 대표는 수많은 시련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다시 일어섰다.
카페명을 야놀자로 바꾼 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0년이 흐른 지금, 야놀자를 직원 170명 평균연령 28세의 젊은 기업, 선도적 기업으로 당당히 성장시켰다.
이수진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좀더 윤택한 삶을 위해 달려왔다면 지금은 회사 구성원의 미래를 위해 달리고 있다”며 “중저가 숙박시설에 대한 인식 개선을 통해 이런 시설들이 대중적인 감성 문화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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