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3일 일어났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고(故)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에 수차례 찔린 시신으로 발견된 것.
당시 화장실에 있었던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와 미 군속의 아들인 혼혈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 검찰은 이들 중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리에게 무기징역을, 패터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각각 선고했고 이듬해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리에게 징역 20년을, 패터슨에게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태원살인사건은 해결된 것처럼 여겨졌다. 이태원살인사건 범인은 에드워드 리와 아더 존 패터슨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에드워드 리가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아더 존 패터슨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에드워드 리 무죄 판결을 한 즉시 검찰이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했다면 아더 존 패터슨이 범인임을 밝히고 아더 존 패터슨을 형사처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더 존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 중이었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정부는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아더 존 패터슨을 석방했고 아더 존 패터슨은 1999년 8월 당국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이용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로 인해 당시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는 이뤄지지 못했고 2015년 9월 23일에서야 아더 존 패터슨은 국내로 송환돼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만약 김대중 정부가 아더 존 패터슨을 특별사면하지 않았으면, 아니 특별사면 후에 출국금지 연장만 제대로 했다면 당시 검찰은 훨씬 수월하고 빨리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를 해 아더 존 패터슨이 진범임을 입증해 아더 존 패터슨을 형사처벌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김대중 정부가 자기나라 국민이자 죄 없는 한 대학생을 아무런 이유도 없인 잔인하게 죽인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을 비호하는 데에 급급해 특별사면으로 풀어주고 미국으로 도주할 수 있게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이태원살인사건 이태원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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