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를 상징하던 ‘킥 앤 러시’는 바로 힘과 스피드를 압축한 말이다. 강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선 굵은 축구를 즐기던 축구 본토의 문화를 잘 표현했다. 하지만 한계가 보인다. 현대 축구에서 기술과 전술의 발달은 너무 빨라서 한 순간만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EPL팀들은 축구를 잘하려기 보다는 오직 살아남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상위팀과 하위팀 모두 나름의 사정으로 실리 축구를 한다. 심지어 작년 우승팀 첼시는 몇 년 째 골대 앞에 ‘버스’를 세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웨스트햄도 유로파리그 티켓 경쟁을 하며 지나치게 수비적이고 운동 능력에 의존한 전술로 축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위권 팀들은 강등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수비적이고 거친 경기 운영을 한다. 작년 헐시티나 번리 같은 경우는 거친 태클과 지나친 몸싸움으로 위험한 플레이를 한다고 비난 받았다. 스토크 시티와 같은 중위권 팀들도 큰 덩치를 활용해 반칙과 몸싸움의 중간 지점에 있는 플레이를 즐긴다.
심판들의 관대함은 선수들의 부상을 부른다. 거친 태클을 용인한 결과 수 많은 선수들이 ‘살인 태클’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 시즌만 해도 스완지의 카일노턴이 헐시티 메이어의 태클에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번리의 애슐리 반스가 첼시 마티치에게 한 ‘살인 태클’은 선수와 감독 간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반스는 경고 한 장도 받지 않았다. 과거 아스널의 유망주 아론 램지를 1년 이상 축구장에서 떠나게 만든 스토크 시티 라이언 쇼크로스의 태클도 있었다. 한국의 이청용은 톰 밀러의 거친 태클에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어야 했다.
거친 축구 문화와 관대한 심판의 파울 콜은 리그 전반의 전술 발전과 기술 진보를 더디게 한다. 부상을 피하려면 선수들은 기술을 익히기 보다 피지컬을 먼저 키워야 한다. 때문에 잉글랜드는 몇 년 째 팀 내 ‘크랙’ 혹은 ‘테크니션’의 부재로 애를 먹고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기술이 좋고 공을 잘 다루는 아자르나 산체스 같은 선수들은 대부분 타 리그에서 데리고 온 선수들이다. 잉글랜드에서 오랜 시간 뛴 발밑이 좋은 유망주, 곧 잭 월셔나 찰스 바클리 같은 선수는 부상에 시달린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세비아와 발렌시아 같은 스페인의 팀들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나 볼프스부르크 같은 팀들도 전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며 자신들만의 철학이 있는 축구를 하고 있다. 정체하고 있는 건 EPL뿐이다.
유럽 리그에서는 그들을 도와줄 심판도 없다. 코스타의 폭력행위를 방조한 마이크 딘 같은 관대한 주심은 유럽 무대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타 리그 주심들은 선수를 보호하고 축구 경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의 폭력 행위나 거친 플레이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유럽 무대에서 EPL팀들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리그의 수준에도 주기가 있고 지금은 EPL이 하락기기 때문에 곧 반등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 째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써서 월드 클래스 스타와 유망주를 사들이는 리그가 EPL이다. 세대교체와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축구 경기에서 이기려는 경기를 하는 게 무슨 죄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기지도 못하는 게 문제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도태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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