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소현 기자 = 국내 항공업계가 조종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숙련된 내국인 기장들이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중국과 중동 항공사로 대거 이직하는 문제가 대두된 가운데, 한편에서는 매년 수백명 조종사 지망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이 ‘베테랑’ 내국인 기장의 빈자리를 외국인 조종사로 충당하고, 정작 숙련된 내국인 조종사 양성에 뒷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사 입사에 필요한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 총 867명이다. 지난해 국내 채용된 신입 조종사는 항공업계 평균 300여명 안팎으로 실제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3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기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체제에서 저비용항공사의 등장으로 국내 항공시장의 규모가 커졌지만, 국내 항공사 취업 적체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절반이 넘는다.
국내 최초 저비용항공사인 한성항공이 등장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항공사 입사를 위해 사업용 조종사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총 6159명이다. 이 가운데 항공사에 취업해 ‘여객 운송용 조종사’ 자격증으로 교체한 사람은 3258명에 그쳤다. 지난 12년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약 50%에 달하는 셈이다.
문제는 국내서 양질의 조종사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내 항공사의 내국인 조종사 양성을 위한 투자는 전무하다. 자체 교육훈련 시설로 조종사를 양성하는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며 운항인턴 제도로 매년 20명을 양성하는 것이 전부다. 국내 조종사 인력 50% 이상을 채용하는 대한항공은 자체 조종사 양성기관이 없다.
정부는 지방대학 등에 조종사 양성을 위한 학과만 지속적으로 인가를 내주고 있다. 지난 2003년 조종사를 양성하는 항공운항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한국항공대학교와 한서대학교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신규로 한국교통대학교, 초당대학교, 청주대학교, 극동대학교, 경운대학교, 충청대학교, 항공전문학교 등 7곳이나 생겨 총 9군데 대학교에서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다.
조종사 교육을 시키는 사설 교육원도 2003년 당시 한국항공대학교 부설 조종사훈련원과 한서대학교 부설 한서비행훈련원 등 2군데에 불과 했지만, 지금은 17군데의 사설 교육기관이 신설돼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다.
양성된 조종사 지망생들은 많지만 이들은 항공사의 신규 조종사 채용에서 요구하는 높은 비행경력 기준에 부딪힌다. 국내 비행교육훈련기관의 비행교육시간은 훈련생 1인당 170시간 수준인 반면 국내 항공사가 채용시 요구하는 비행경력은 대한항공 1000시간, 진에어 500시간, 아시아나항공 300시간, 기타 저비용항공사 250시간이다.
결국 국내 항공사들이 요구하는 비행경력을 채우기 위해 조종사 지망생들은 평균 13만 달러(약 1억5000만원) 유학비와 체류비를 지불하고, 해외 비행학교를 추가로 찾아나서야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미경 의원은 “영국은 항공사들이 비행학교와 협력해 부기장으로 미리 선발해 교육하는 등 항공사가 직접 신규 조종사 양성을 담당하고 있다”며 “국내 항공사도 조종훈련생을 부기장으로 선발하고 교육해 이들의 시간적, 경제적 비효율성을 제거하면 불필요한 외화 유출 방지뿐 아니라 계획적인 인력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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