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 결과는? 이변은 없었다. '대세' 유아인을 내세운 SBS '육룡이 나르샤'가 시청률 12.4%(6일 기준·닐슨코리아)로 MBC '화려한 유혹'(9.7%), KBS '발칙하게 고고'(3.2%)를 눌렀다. 5, 6일에 방송된 지상파 3사 월화드라마를 모두 본 방송 담당 기자 최송희, 김은하, 서동욱이 모여앉았다.
김 : '화려한 유혹'이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놀랐어. 사실 1화 초반 30~40분은 진짜 별로였거든. 단발적인 정보들이 산발적으로 나열돼 피로했어. 그래도 아역 배우가 등장하는 회상신부터는 개연성을 확립해가더라고. 아역 연기도 볼만했고…김새론, 김보라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남주혁은 '남자판 수지'라 할 만하게 첫사랑의 풋풋함을 잘 연기해줬지.
서 : 나는 남자라 그런지 남주혁의 부족한 연기력만 눈에 띄던걸. 또 아역 배우와 성인 연기자의 분위기가 너무 안 맞는 것도 아쉬워. 남주혁이 커서 주상욱이 된다니…오히려 키가 줄어드는 경우잖아.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고려하지 않은 데다 김보라가 차예련으로, 김새롬이 최강희로 성장하는 게 너무 싱크로율이 안 맞아서 이름표라도 달아줘야 할 판이야. 성인연기자와의 일치율 보다는 인기에 편승한 캐스팅 같아.
최 : 초반이라 그런 것일지 모르지만, 최강희의 정극 연기도 적응이 안 돼. 역시 최강희 하면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지. 그 장르에 최적화됐고 또 너무 굳어졌기 때문이야. "살면서 처음으로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더 어색한 느낌이야.
서 : 보는 사람은 고사하고 본인도 몸을 던질 준비가 안 돼 보이던걸. 감옥에 가느라 백일도 안된 딸과 생이별하는 장면에서조차 뽀얀 화장이라니…황정음은 과거 드라마 '비밀'에서 로맨틱 코미디 전문 배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잖아. 퉁퉁 부은 눈에 부르튼 입술까지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지. 이에 비하면 최강희는 감옥에 놀러 간 모양새야.
김 : 하지만 아역들이 선방해서 시청률이 오를 것 같아. 2화가 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확 살아났거든. 김병세, 정진영 등 중년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몰입도가 높아졌고,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지만 익숙한 맛에 열광하는 법이니까. 이 흐름을 계속 끌고 간다면 "'육룡이 나르샤'와도 해볼 만 하다"고 자신한 제작진의 말이 허언이 아닌 게 될 것 같아.
서 : '육룡이 나르샤'는 때깔부터 300억 제작비를 실감하게 하게 하더라.
김 : 아기돼지에게 사람이 젖을 먹이는 장면이나, 합창으로 끝나는 2회 엔딩은 정말 신선했어. 탈춤 공연 장면도 웬만한 영화 못지않게 만들어내 '회당 제작비 6억'의 힘을 느낄 수 있었지. 하지만 SBS 사극은 길게 봐야 해. '비밀의 문' '자명고'처럼 용의 머리로 시작했다가 뱀의 꼬리로 끝나는 걸 너무 많이 봤거든. 그래도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를 집필한 김영현-박상연 작가 콤비가 펜을 잡았으니 기대해 볼 만하지.
서 : 하지만 좋은 제작진이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야, '나인'의 송재정 작가와 김병수 PD가 콤비가 뭉쳐 만든 '삼총사'의 실패만 봐도 알 수 있지. 특히 이번에는 '뿌리 깊은 나무'의 대표 프로듀서인 장태유도 없고 말이야. 난 1, 2화가 너무 지루했어. 사극 흥행은 아역에 달려있다는데 이상하게 더 늘어지는 느낌이었지.
최 : '육룡이 나르샤'에 대한 기대는 김명민·유아인과 같은 인지도 있는 성인 연기자 때문이었지. 이들의 모습을 앞에 조금 더 배치해 시청자의 눈을 잡을 필요가 있었어.
김 :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 팩션 사극임에도 불친절한 것이 문제야. 드라마를 보며 실시간 댓글창을 봤는데 "드라마가 나를 무시한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낀다"는 반응이 줄을 잇더라고. 영화 '사도'의 경우 유명 한국사 강사를 섭외해 인터넷 강의 마케팅을 했는데, 덕분에 관객이 사전 지식을 가지고 극에 집중할 수 있었지. 작품이 친절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마케팅 단계에서라도 고민을 해야 했어.
최 : 조재현의 정도전과 비교를 피하기 위해 김명민의 정도전을 괴짜로 설정한 건 흥미로웠어. 국민적 사랑을 받은 드라마 '정도전'과 비교해 보는 맛이 있을 것 같아. 또, 파란 섀도를 눈두덩이에 얹은 김혁권의 교태로운 연기도 압권이지. 지루한 극 전개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서 : 그런데 김명민 캐릭터는 '조선명탐정'이랑 좀 겹치는 것 같아. 보는 중간중간 영화 속 정약용의 모습이 보여. 또 이번 드라마는 '뿌리 깊은 나무' 프리퀄인 만큼 시청자가 무협 액션 대한 기대치가 있을텐데 아직 시선을 압도할 만한 장면이 없는 것도 아쉬워. 지상파 3파전이 촌각을 다투는 시점인데 말이야.
김 : 액션 대신 2화 엔딩에 힘을 준 것 같아.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액션과 카메라 구도가 엉성해서 그런지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어. '발칙하게 고고'는 어땠어? 힘을 팍 준 퍽퍽한 '육룡이 나르샤' '화려한 유혹'이 건빵이라면 '발칙하게 고고'는 별사탕쯤 되려나?
최 : 맞아. 나도 처음엔 '이게 뭐야' 했는데 인터넷 소설 보는 것 처럼 마음도 편하고 '이런 것 하나 있으면 괜찮겠다' 싶더라고.
김 : 하지만 고등학교 현실을 너무 판타지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싶어. 과외 선생을 고용인처럼 부리는 학생이라니…혼자 정의로운 척 다 하면서 수업 중에 선생님 앞에서 친구 걸상을 발로 차는 학생이라니…내가 나이를 너무 먹은 거니?
서 : 이종석·김우빈 주연의 동사 드라마 '학교2013'이 현실과 드라마의 중간 지점을 잘 찾았다고 생각하는데 '발칙하게 고고'는 애들이 애들다운 맛이 없어. 필요 이상으로 발칙하달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10대의 풋풋함을 담지 못한 것 같아.
김 : 캐스팅도 절망적이야. 믿고 볼만한 배우가 없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50부작 주말드라마 '파랑새의 집'에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회사원 연기를 했던 채수빈이 종영 2개월 만에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게 영 적응이 안 돼. 정은지 역시 '응답하라 1997'에서의 사랑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억척스러움만 남았어. 여자주인공에게 꼭 필요한 '그럼에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없으니 남자주인공이 정은지에게 반하는 게 이해가 안 되고, 그러다 보면 극 전체가 흔들리는 거지.
서 : 30대 남자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너무 오글거려. 심지어 웃기지도 않지. 모든 게 다 과하달까? 남주인공이야 원래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존재라지만 과도하게 멋있는 척을 해. 여자주인공을 극한으로 모는 상황도, 그 와중에도 활발함을 잃지 않는 여주인공까지…그냥 다 과해.
최 : 까마귀 효과음에 만화 같은 장면을 중간중간 삽입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까? 아예 '우리 드라마는 원래 그래'라고 뻔뻔하게 선포하는 거지. 방패막이처럼 말이야. 순간의 연출만 아쉬운 게 아니야. '해체된 동아리를 되살리기 위한 정은진의 고군분투'로 16부작을 어떻게 끌고 갈지 의문이야.
김 : 그래도 학교라는 설렘과 청춘이 가득한 공간에 멋진 남자주인공이 있으니 10대 시청자를 잡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나 역시도 세 드라마 중 본방송 시청할 것을 고르라면 '육룡이 나르샤'에 유아인이 나오기 전까지 '발칙하게 고고'를 보겠어. 라면처럼 편하고 익숙한 맛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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