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자영업자의 늪] (상) 금융소외계층 자영업자, 채무 면책에도 휴대폰 할부조차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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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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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황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남궁진웅 timeid@]


<글 싣는 순서>
[금융권은 자영업자의 늪] 한번 망하면 재기불능…금융권에서 버림받은 자영업자들
(상) 금융소외계층 자영업자, 채무 면책에도 휴대폰 할부조차 힘들어
(중) 실패한 자영업자, 결국 2·3금융권으로…이어지는 '고금리의 늪'
(하) 아무리 용을 써도 늘기만 하는 빚…구제방안 절실


아주경제 장슬기·홍성환·이정주 기자 = #. 지난 1994년부터 모 기업의 대리점을 운영하던 J(52)씨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본사의 부도로 인해 문을 닫고 대규모 채무를 지게 됐다. 당시 J씨는 보유 자산으로 빚을 갚았지만 일부 채무 상환이 불가능해 결국 법원에 채무면책 신청을 했다. J씨는 2007년 법원으로부터 "채권자에게 지고 있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선고를 받았다. 8년이 지난 현재 J씨는 재기를 꿈꾸며 새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주거래은행이었던 A은행의 영업점에서 소멸시효가 지난 J씨의 채무 관련 정보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본인 명의의 금융거래가 금지된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후 J씨의 사례와 같이 과도한 채무로 인해 채무면책을 신청한 자영업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면책을 선고받아 채무에 대한 소멸시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금융권에서 기본적인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금융권의 그릇된 관행으로 재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 채무 면책자 정보 5년 지나도 보유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개인의 채무 및 면책 관련 신용정보는 은행연합회가 종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채무자가 법원으로부터 채무면책 선고를 받게 되면 연합회는 해당 선고일부터 5년간 해당 기록을 보유한 후 자동 삭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채무면책을 받게 되면 채무자는 상환 의무가 사라지게 되지만 은행에는 채권추심을 할 수 없는 채무(자연채무)로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자연채무의 소멸시효는 5년인 셈이다.

5년 후에는 관련 기록이 삭제돼 면책자들은 해당 채무로 인해 금융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신용정보보호법 제18조 2항에서도 '신용정보회사등은 신용정보주체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신용정보를 그 불이익을 초래하게 된 사유가 해소된 날부터 최장 5년 이내에 등록·관리 대상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5년이 지난 후에도 해당 정보를 공공연하게 보유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면책 후에는 해당 정보가 5년까지만 은행연합회에 귀속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채무가 발생한 일부 영업점 등에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채무 정보를 일부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채무 소멸시효가 지난 후에도 신용이 필요한 카드 발급은 물론 휴대폰 할부 구매도 불가능한 채무면책자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재기를 위한 은행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J씨의 경우에도 면책 후 8년이 지나 은행연합회 및 서울보증기금에는 모든 채무 관련 기록이 삭제된 상태지만 주거래은행의 한 영업점에 해당 정보가 남아 있어 현재 신용과 연계된 모든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신용회복위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신복위 관계자는 "신복위의 주요 업무는 채무를 조정해 주는 것"이라며 "파산 선고나 채무 면책을 받았다는 것은 빚에 대한 책임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신복위에서 채무조정을 지원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재기 도울 수 있는 장치 마련돼야

일부 자영업자의 경우 꾸준히 거래해온 주거래은행에서 조차 대출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몇 년간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잇따라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사용한 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매출이 일정치 않아 소득 증명이 어려워 대출 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승인된다고 해도 낮은 소득으로 대출 한도가 높지 않아 결국 고금리인 2금융권이나 대부업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기도에서 치킨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최근 운영자금 부족으로 대출을 받기 위해 주거래은행을 찾았지만 과거 대출 내역으로 인해 700만원 대출받는 것도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몇년간 안정적으로 거래를 해왔는데도 대출 승인이 나지 않아 가게를 접어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은 사실상 5년 이상 정보를 보유하면서 내부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며 "감독당국이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채무 면책자가 5년 후 금융권에 대출을 신청해봤자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이들을 위한 재기 프로그램이나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채무에 대해 개인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연체나 신용상 문제를 완전하게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법적으로 정보를 폐기하도록 규정해 놓은 시기는 기본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지도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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