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돈은 회수됐지만 중앙은행에서 통화가 무단으로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데 사건의 심각성이 있다. 21년 전에도 부산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한국은행이 보안을 강화했지만, 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17일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외주업체 직원 김모(26)씨를 절도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김씨는 16일 오전 10시 20분께 한은 부산본부 지폐 분류장에서 5만원권 지폐 1천 장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한은은 매일 시중에 유통되다가 입금된 지폐 가운데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돈과 폐기할 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작업에 사용하는 기계인 정사기를 수리하는 외주업체 직원인 김씨는 이날 돈을 훔쳐 서류봉투에 넣고 "우체국에 다녀오겠다"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훔친 돈을 집에 가져다 놓고 다시 태연하게 은행으로 돌아와 근무했다. 오전 업무를 마치기 전 정산작업을 하던 한은 직원들은 돈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100여대가 넘는 CCTV를 분석해 김씨가 건물을 빠져나갔다가 돌아온 사실을 확인한 한은은 청원경찰과 함께 김씨 집을 찾아가 숨겨 놓은 돈다발을 찾아내고 김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은 한국은행 측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김씨를 긴급 체포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오래 근무를 하다 보니까 CCTV 사각지대가 보였고, 순간적인 욕심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2년 4개월간 이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한은 부산본부 관계자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의심받지 않고 건물을 나갔지만 자체 감시시스템을 총동원해 돈을 회수하고 김씨를 경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비록 발생 11시간 만에 전모가 드러났지만, 이번 사건은 중앙은행의 보안 시스템이 또 한 번 뚫린 사례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는 1993년 12월과 이듬해 4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1만원권 55장이 외부로 유출됐다.
은행 서무직원이던 김모씨가 분류작업에 쓰이는 정사기의 칼날 간격을 조작해 폐기해야 할 지폐를 몰래 빼돌렸다가 뒤늦게 적발됐다. 당시 이 사건은 은폐되다가 1년4개월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한은은 당시 사건 이후 보안시스템을 강화했다. 하지만 한은이 자주 드나드는 직원이라는 이유로 보안 지침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21년만에 통화 유출 사건이 재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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