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잠깐 다녀오겠다"한게 65년 흘러....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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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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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6개월 새색시, 여든 넘어 남편과 상봉

2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1차 단체상봉에서 채희양(66)씨가 북측에서 온 아버지 채훈식(88)씨 만나 오열하고 있다. [사진=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금강산 공동취재단 ·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잠깐 다녀오겠다"고 외출한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까지 65년이 흘렀다.

북에 사는 아버지 채훈식(88)씨를 만난 아들 희양(65)씨는 생후 갓 돌이 지났을 무렵 헤어진 아버지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들을 강하게 부둥켜 앉은 아버지는 쓰고 나온 중절모가 벗겨진지도 모른 채 함께 울었다.

남편이 내미는 손을 못내 잡지 못한 아내 이옥연(88)씨는 "이제 늙었는데 손을 잡으면 뭐해"라며 지난 세월의 짙은 회한을 드러냈다.

이날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는 총 5가족이 부모-자녀간 만남을 이뤘다.
 

제20회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쪽 이진구 할머니가 북쪽 오빠 리용구(모자쓴이)를 만나고 있다. [사진=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생후 한 달 만에 헤어진 아버지 정세환(87)씨를 만난 딸 연자(65)씨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항상 "그렇게 잘생겼다"고 떠올렸던 자신의 아버지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자 씨는 연신 "우리 아버지 맞아, 아버지 맞구나!"라고 확인하며 "엄마, 아직 살아 있어"라고 거동이 어려워 이번 상봉에 참여 못 한 어머니의 소식을 전했다.

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은 너무 오랜 세월 탓에 서로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남측 가족 손종운(67·남)씨는 아버지 손권근(83)씨의 명찰을 뒤집어 확인하고 나서야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종운씨는 "태어나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봐"라며 눈물을 흘렸다.

왼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한 권근씨는 "귀가 먹어서 잘 듣지를 못해"라고 말하며 아들의 손을 꽉 붙잡았다.

권근씨의 여동생 권분씨는 "내 생전에 오빠 얼굴 못 보는 줄 알았지"라며 오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이날 이산가족 상봉 행사 북측 대상자 명단에는 북한 최고 수학자였던 고(故) 조주경(1931∼2002년) 씨의 아내 림리규(85) 씨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림리규 씨는 20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인 금강산호텔에서 남한에 사는 동생 임학규(80), 조카 임현근(77), 시동생 조주찬(83) 씨 등을 만났다.

한국전쟁 당시 5남매 가운데 학규씨의 누나인 리규씨만 인민군에 붙잡혀 북에 남게 돼 이산가족이 됐다.

리규씨의 남편 조주경 씨도 서울대 재학 중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끌려갔다.

조주경 씨는 지난 2000년 상봉 행사의 북측 상봉 대상자에 포함돼 서울에서 꿈에 그리던 어머니 신재순(당시 88) 씨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주경 씨를 만났던 주찬 씨는 이번 상봉에서는 형수와 조카를 만나게 됐다.

주경 씨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

그는 '확률 적분방정식', '해석수학', '통보론' 등 50여권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필하는 등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80여건의 과학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조씨는 30대에 박사, 40대에 교수, 50대에 공훈과학자 및 후보원사, 60대에 원사 및 인민과학자가 됐다.

주찬 씨는 "이번에 2004년 북한 언론에 난 사촌형의 부고기사 복사본을 들고 와 형수를 만났다"고 밝혔다.

결혼 6개월 만에 6.25로 인해 헤어졌던 부부도 다시 만났다. 남측에 살고 있는 아내 이순규 (85)할머니는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65년 만에 남편 오인세(83)씨와 재회했다.
 

2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1차 단체상봉행사가 북측 오인세씨와 남측 배우자 이순규씨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편은 말없이 아내를 쳐다봤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쳐다봤다.

부부의 아들 장균(65)씨는 "아버지 있는 자식으로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울먹였다.

며느리 이옥란(64)씨는 자신의 남편과 닮은꼴인 시아버지에게 가지고 온 시부모의 결혼사진을 보이며 "아버님 기억나세요? 어머님 건강하세요, 아버님 만나려고 건강하셨나 봐요"라며 기억을 끌어냈다.

그러자 오인세 씨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못생겼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인세 씨는 아내 순규 씨의 손을 잡고 또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지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을 늘어놨다.

오 씨는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나는 말이야 정말 고생길이, 고생도 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말이야....."

남측 가족들과 함께 온 형수 이동임(93)씨는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는 바람에..."라며 연신 눈물을 닦으며 안타까워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만난 순규 씨는 결혼 선물로 주고 싶었던 시계와 구두를 재회 선물로 준비했다.

이 할머니는 "결혼할 때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내 일생이 거기에 묻힌 거 아니야. 결혼할 때는 시계 같은 게 시골에 별로 없으니까..."라며 말 끝을 흐렸다.

이 할머니는 "결혼 하자마자 헤어져서 보고 싶은 거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탄식), 눈물도 안 나오잖아요.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까......"라며 전쟁으로 인한 세월의 아픔을 담담하게 말했다.

이산가족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춘 듯했다. 우리 측 주최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은 60여년의 세월을 단박에 넘어선 듯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부둥켜안았다.
 

2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1차 단체상봉행사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오후 3시20분 상봉장에 먼저 도착한 남측 가족 389명은 북측 가족 141명을 기다리는 10여분 동안의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남측 가족들은 북측 가족들이 들어올 입구를 향해 시선을 집중한 채 미동도 하지 못하는 듯 긴장된 모습을 보였고, 일부 가족들은 지정된 테이블을 벗어나 입구 앞까지 다가가기도 했다.

상봉장에 기대와 설레임, 걱정이 교차하던 그 때 북측 가족들이 하나둘씩 남측 가족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남북의 가족들은 서로의 관계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확인한 뒤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상봉장에는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가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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