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국내 연구진이 한국 독수리의 유전체 분석을 통한 수렴진화 양상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국립중앙과학관이 21일 밝혔다.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는 유전적 계통이 다른 생물이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진화 현상이다. 한국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와 신대륙(New World·아메리카 지역)의 독수리는 유전적으로 거리가 매우 떨어져 있는데도 진화적으로 같은 유전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 독수리는 미국 칠면조독수리와 6000만년, 미국 대머리독수리와는 1800만년 전 유전적으로 갈라졌다.
중앙과학관과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이 독수리들이 병균에 강한 위장과 피 속 면역 방어라는 같은 유전적 요인을 가진 것은 사체를 먹는 동일한 식습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한국 독수리 수렴진화의 과학적 증거를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다.
공동 연구팀은 먼저 살아있는 한국의 독수리의 혈액 샘플로부터 게놈 정보를 해독했고 이를 이용해 다른 종류의 독수리 16종과의 게놈 비교진화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면역과 위산 분비와 관련된 유전자가 특이적으로 진화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독수리가 부패한 먹이를 섭취해도 질병에 걸리거나 병원균에 감염이 되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은 것이다.
사람과 같이 기존의 게놈 정보가 알려진 경우와 달리 독수리처럼 게놈 정보를 처음으로 규명하는 경우에는 정교한 분석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구팀은 첨단 차세대 DNA 해독기와 생정보학 기술을 활용하여 약 20개월 간 분석했다.
공동연구 책임자인 백운기 중앙과학관 과장은 “이번 연구는 한국이 최초로 독수리의 게놈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 23종의 독수리류가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독수리 진화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종 보존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화 게놈연구소장은 “본 연구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중요한 면역, 감염 등과 관련된 많은 유전적 변화를 의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질병 연구뿐 아니라 미래 신약개발 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며 “그 활용과 산업화에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게놈 분야 세계적 전문 학술지인 게놈 바이올로지(Genome Biology) 온라인판에 21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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