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서울 소재 국립대를 졸업, 1년간의 취업준비 끝에 중소기업에 계약직으로 취업한 김 모씨(29·남)는 3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일은 많고 받는 돈은 쥐꼬리인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도 추가 수당은 없었다. 그렇다고 계약 기간을 채우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보장도 불확실했다.
청년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나들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정작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일자리 양극화가 심해지자 일명 '나쁜 일자리'에 취업하느니 취업 준비생(실업상태)의 위치에서 '좋은 일자리'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는 그대로 청년 실업률의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일자리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 중 임금 기준 소득 10분위(상위 10%) ,소득 1분위(하위 10%)의 격차는 무려 4.5배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최상위 권이다. 특히 국내 완성차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은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3.4배다. 이웃 일본의 경우 2배 수준에 그쳐 선진국과 비교해도 소득의 양극화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직접고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하도급을 최대한 활용해왔다.
또한 직접고용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지난 2013~14년 기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36.7%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숫자는 지난 2008년 544만5000명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 처음으로 600만명을 돌파, 607만7000명을 기록했다.
2013년 기준 OECD 가입국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이 11.8%인데 발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30%가 넘어간다.
한국 고용시장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청년 실업률을 해소를 위한 정부 대책의 실효성이다.
'청년희망펀드', '청년희망 예산',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 최근 들어 정부가 쏟아낸 청년 취업 관련 대책들이다.
특히 정부는 2016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2조1213억 원을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으로 편성했다. 예산안 발표자료에는 '일자리를 늘려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청년실업률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청년 실업자는 올해 상반기 44만9000명(10.1%)에 달했다. 2월에는 무려 11.1%를 기록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최근 다소 하락해 9월 현재 7.9% 수준이지만 이 역시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아예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작년보다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업자나 마찬가지인 구직단념자가 늘어나면 실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9월 구직단념자는 48만8000명으로 8월(53만9000명)보다는 줄었지만, 작년 9월(46만3000명)보다는 2만5000명 늘었다.
또한 정규직보다 주로 아르바이트와 같은 시간제나 비정규직 등 이른바 '나쁜 일자리'에 취업하는 경우가 늘었다.
비정규직과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주당 53시간 이하 취업자는 작년 9월 1974만5000명에서 지난달 2019만8000명으로 2.2%(45만3000명) 늘어났다. 그러나 정규직 비중이 높은 주당 54시간 이상 일자리는 1년 전보다 1.2%(583만2000명576만명) 줄었다.
청년층 일자리 가운데 시간제 비중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인 2007년 7.6%로 낮았지만, 올해는 15.1%로 두 배로 껑충 뛰었다. 또 청년층 취업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33%로 모든 연령대 평균(32%)보다 높다.
한 노동전문가는 "취업난에 몰려 질 나쁜 일자리에 취업했던 청년들은 오래지 않아 다시 취업준비생(실업자) 신분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구직단념자의 증가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청년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건 일자리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선택할 만한 수준의 일자리가 적기 때문"이라며 "무턱대고 취업하라고 할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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