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葆華閣)이 설립됐다. 설립자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었다.
간송은 23세 때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을 만나며 '문화독립운동'에 눈을 떴다. 3·1 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던 위창은 뛰어난 서예가이자 전각가(篆刻家)였다.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으로 '보화각'이라 이름을 붙인 것도 위창이었다. 간송은 위창에게 전각과 서예를 배우며 '문화보국'(文化保國,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을 인생의 목표로 세웠다.
간송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지켰고 현해탄을 건너 신윤복의 '혜원전신첩'도 구해왔다. 1935년엔 거금 2만 원을 들여 일본인이 갖고 있던 고려 최고의 상감청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구입했다. 당시 2만 원은 기와집 20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1938년 일제가 한글 교육 금지령을 내리며 민족말살정책을 펼칠 때 간송은 대표적 민족사학인 보성학교를 인수해 운영하고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을 어렵게 구해냈다.
1962년 간송이 타계한 뒤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금동삼존불감(국보 73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등 국보급 대작들을 다수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간송미술관이 23일 새로운 대작들을 선보인다.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란 이름의 이번 전시는 고려 말에서 조선말까지 500여 년 동안 당대를 대표할만한 화가들이 동식물을 소재로 그려낸 작품으로 마련된다. 공민왕, 이징, 윤두서, 정선, 변상벽,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신사임당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 있는 전시다.
'화훼영모'(花卉翎毛)는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동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화훼영모화라 부른다. 이번 전시에선 화훼(花卉, 꽃과 풀), 화조(花鳥, 꽃과 새), 초충(草蟲, 풀과 벌레), 영모(翎毛, 새와 짐승), 어해(魚蟹, 물고기와 게), 어하(魚蝦, 물고기와 새우)를 총망라한 작품을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의 백인산 학예실장은 "앞서 열린 '진경산수화', '매.난.국.죽' 전시에 이어서 이번엔 화훼영모전을 준비했다"며 "이전 전시보다 부담 없고 좀 더 친근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내년 3월2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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