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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 글로벌뉴스본부장
작가 왕후이링은 노자(老子)사상과 불교에 두루 밝아 왕두루가 쓴 무협소설 ‘와호장룡’을 영화 대본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리안·왕후이링·제임스 3명은 와호장룡(臥虎藏龍·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을 찍기 전 영화 ‘음식남녀’에서도 손잡고 일했었다.
15년 전인 2000년 개봉된 영화 와호장룡은 전 세계인들에게, 특히 서양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협 세계의 신비로움을 새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대 최고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리무바이(저우룬파 분)와 부모가 원하는 정략결혼을 뿌리치고 강호로 뛰어든 위자오룽(장쯔이 분). 두 사람이 대나무 숲에서 무공을 겨루는 장면은 단연 백미였다. 전통적인 무협영화의 화려한 액션과는 확실히 다른 은은한 감동을 줬다. 위자오룽이 무당산에서 천애의 계곡 밑으로 몸을 던지는 라스트 신은 또 어떤가.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는 중국 장시(江西)성 출신으로 대만 이주 뒤 중고교와 사범학교 교장을 지냈다. 리안은 학교 졸업 뒤 뉴욕에 눌러앉았다. 체내에 대만과 중국 본토는 물론 미국의 문화가 녹아드는 환경이 제공된 셈이다.
리안이 와호장룡을 통해 중국 전통문화의 오묘함을 서양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우연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그 뒤 2000년 중반 드라마 대장금이 중화권에 엄청난 한류 바람이 불어닥치게 한 것과 대비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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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아주경제 김효곤 기자]
1990년대 드라마, 가요 등에서 시작된 한류는 지금 다양한 분야로 퍼지고 있다.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한국 본방송 뒤 불과 몇 시간 내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정확한 중문 자막까지 달린 화면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는 대장금을 비롯해 겨울연가, 별에서 온 그대 등이 기여한 바가 컸다. 이들 드라마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한류 20년 대표 콘텐츠’에도 포함됐다.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는 ‘러닝 맨’이 선정됐다. 러닝 맨은 저장위성TV에 수출돼 ‘달려라 형제’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한류는 이제 중화권 사람들의 패션, 음식 등 라이프스타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들이 한국 상품을 ‘한훠(韓貨)’라고 부르며 화장품, 의류, 식품 등 구매에 열을 올리는 건 익히 아는 대로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국의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뿐 아니라 서부 내륙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여기서 한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메이(韓媒), 즉 한국 매체들이 나서야 할 차례다. 한국 관련 뉴스를 인터넷으로 중화권에 전하는 10여개 토종 중국어 매체의 힘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중국의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화문(華文) 매체가 각국 간 협력과 교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뉴미디어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어 화문 매체 간 상호 발전을 꾀해야 한다.” 세계 최대규모 중화권 언론사 대회인 ‘제10회 해외화문매체합작조직 서울총회’에서 나온 참석자들의 발언이다.
서울총회는 아주경제 주최로 이달 중순 열렸다. 아주경제는 중국 포털 등에 중국어 뉴스를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국내 매체로는 유일하게 중국어 신문을 발행한다. 중국의 현재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7억명이나 된다. 이들을 포함해 중화권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 소식을 알리는 것은 거의 무한 영역이다.
이를 위해선 한·중 양국의 현재 상황과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두 언어 구사 능력은 기본이다. 동·서양의 언어와 문화를 함께 아는 리안이 와호장룡을 만들어 내고,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바탕으로 대장금이 탄생된 것처럼.
(아주경제 글로벌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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