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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슈미트 [사진=슈미트 페이스북]
사회민주당(SPD) 출신의 슈미트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4년부터 82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냈다.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고, 후임인 헬무트 콜 총리가 통일 과업을 완성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집권 기간 동안 슈미트는 전 세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를 타개하고자 발레리 지스카르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독불 정상협력을 통해 경제위기를 돌파했고, 이런 시도는 이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국 정상 협력틀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또한 다양한 경력과 기행으로 유명하다. 특히 슈미트는 J.S.바흐 작품에 정평한 건반 연주자이기도 했다.
1985년에 레코딩한 바흐의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A단조(BWV 1065)’는 음악인으로서 그의 높은 역량을 말해주는 좋은 예다. 당대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와 게르하르트 오피츠, 그리고 슈미트의 절친 이기도 한 유스투스 프란츠 등과 합주(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한 이것은 이 레퍼토리에서 빛나는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건반 연주자로 일류 피아니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고 이후 정치인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피아노 연주를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또한 명지휘자 카라얀의 열혈 팬이기도 했다. 공공연하게 “이 사람(카라얀)은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며 입버릇처럼 존경의 뜻을 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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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슈미트가 연주한 바흐의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앨범 자켓
슈미트하면 연상되는 또 하나는 담배다. 그는 역대 세계의 정치인 가운데 최고의 ‘골초’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흡연을 시작했으며 건강 때문에 평생 금연은 단 한 차례만 시도할 만큼 헤비스모커였다. 총리 시절에도 기자회견은 물론 정상회담에서조차 입에 담배를 물고 등장해 화제가 됐고, TV인터뷰에서조차 줄담배를 피워가며 대담을 할 정도였다. 젊은 시절 즉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너무 배가 고파 담배와 감자를 바꾼 기억이 일생일대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회상하는 일화도 유명하다.
90이 넘은 나이임에도 유럽연합(EU)의 담배 생산 금지 조치에 대비해 자신이 오랫동안 피우던 ‘멘솔’담배를 수백여보루 사재기한 것,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때 알게된 로키라는 여성과 사랑의 결실을 맺어 68년동안 가정을 이루다가 로키가 죽자 95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여비서와 재혼을 하는 등 슈미트는 쉴 새 없이 이슈메이커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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