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에 도전한 정치인]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 "대구에 뼈 묻겠다…모든 걸 쏟아부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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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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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부겸 전 의원 사무실 제공]




아주경제 주진 기자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도종환 시 ‘담쟁이’”

한국정치의 오랜 고질병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절망의 벽을 맨몸으로 기어오르는 정치인이 있다. 여당의 전통 텃밭인 대구에서 두 번의 쓰라린 패배를 맛봤지만, 세 번째 도전을 위해 또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는 푸른 담쟁이,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이 바로 그다.

‘지역주의 벽을 넘어보겠다’고 3선의 기득권을 버리고 대구로 내려간 지 벌써 4년이 다 됐다. 지난 해 야당 간판을 달고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40.3%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대구가 어떤 곳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고, ‘우리가 남이가’로 통하는 여당의 전통적지지 텃밭이 아닌가. 야당 후보의 40% 득표율은 한국정치사에 이변으로 기록될 정도로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그 변화의 중심에 ‘김부겸’이 있다.

-지금 대구 민심은 어떤가?
“‘대구 발전을 위해서는 야당도 필요하다,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이 경쟁적으로 뛰게 만들어야 대구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대구 시민들이 이제 체감하고 있다. 지역의 바닥 민심이랄까 서민층의 인식은 바뀌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이제 새누리당이라고 무조건 찍어주던 시대는 지났어요. 믿어보시라니깐요?’ 하고 오히려 내 등을 두드려주시기도 한다. 이분들이 평생 동안 익숙해 있는 관성, 고정관념, 어떤 틀을 스스로 깨려 한다. 진짜 힘든 일이다. 엄청 노력하고 있다. 대구 사람들은 겉으로 잘 표현도 안 한다. 속으로 무던히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걸 제가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대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50%대를 훌쩍 넘는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자리 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그가 버티고 있는 수성갑 지역의 여당 후보로 대권주자인 김문수 전 지사가 낙점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 김문수 전 지사가 출마한다면 전략은 무엇인가?
“김문수 선배는 같은 고등학교․대학교에 운동권 선후배 사이다. 김 선배는 고등학생 시절 제 우상이었다. 물들인 군복을 입고 혁명가같이 나타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격정을 토로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저는 서울대 앞에서, 선배는 신림 사거리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할 때는 형수와 제 집사람이 같이 책을 압수당하고,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여당 후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김 선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거기다 출마의 변으로 김부겸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본인 밖에 없어서 내려오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정말 비통하고 참담했다. 인간적으로는 여전히 저의 선배다. 상황도 대단히 불리하다. 제가 다시 경기도 군포로 돌아가겠는가? 서울로 가겠는가?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쏟아 붓고, 그래도 안 되면 장렬하게 전사할 각오다. 사즉생이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많을 때는 가야 할 곳이 10군데가 넘을 때도 있다. 몸이 부서져라 뛰고 또 뛴다.”

- 그럼에도 제1야당인 새정련은 지지율 반등 기미가 없다. 특히 야당이 영남 민심을 얻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나?
“전략이 아니라 자세다. 정치를 하는 자세가 지금 틀렸다고 국민들은 보는데, 정작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다. 지금 야당이 맨날 계파 싸움으로 날이 새고 지는 걸 국민이 다 안다. 계파 싸움을 왜 하는지도 다 안다.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관심 있고, 우리를 위해 내놓는 것이 별로 없더라는 것이 국민의 불만이다. 아무 것도 산출하지 않는 정치, 국민들이 먹고 사는 데 어떤 도움도 되어주지 못하는 정치, 그러면서 자기들 공천 받고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데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정치, 그걸 어떻게 국민들이 좋아할 수 있겠는가? 정치를 왜 하려고 했는지, 자기 정치의 대의는 무엇이었던지 우리 모두 다시 돌아봐야 한다. 영남이라고 호남이라고 다르겠는가? 다 똑 같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발 국민들의 하루하루 어려운 삶을 좀 챙겨가면서 싸우더라도 싸우라는 거다.”

그는 당내 계파 갈등을 불식시키고 통합과 혁신을 위해 신뢰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뜻에서 박영선 의원 등 일부 중진의원들과 의기투합해 ‘통합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김 전 의원은 “우선 모든 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뒤, 혁신에 나서야 한다. 가차 없는 인적 혁신과 자기 희생과 헌신을 통해 국민 감동을 일으키지 못 하면 선거는 치러 보나 마나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 대표에게 이순신 리더십을 발휘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드렸다. 이순신 장군도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 고생을 하고 나라를 지켜도 모함 당하지, 고문 받지, 군량이 없어서 직접 농사까지 지어가며 전투를 치러야 했다"며 "그래도 장군은 백의종군했고, 13척으로 전투에 나갔다. 왜 그랬겠는가? 백성들에 대한 긍휼심이다.  다시 한 번 문대표의 결단을 호소 드린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야권 지지층 결집을 위한 야권연대․통합과 같은 ‘빅텐트론’에 대해선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으로 진보정당과 연대가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의 빅텐트론은 새정련에서 갈라져 나간 것을 다시 봉합하자는 의미이지 과거 진보정당까지 포함하는 반보수연합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현 양당제는 분명히 한계에 부닥쳐 있다. 특히 진보적 목소리를 제 몫만큼 반영해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자유주의 정당에게 진보주의의 과제까지 해결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서 "그래서 늘 자유주의정당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강경과 온건, 급진과 점진, 가치의 절대성과 상대성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호남에서 신당창당을 준비하는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 등과 문 대표가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총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러면서 여당의 신보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승민 의원이나 여당 소장파․개혁세력과의 결합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논란이 정국이 뒤흔들고 있다. 대구 여론은 어떤가?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나 정치권은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한 발 물러나는 대신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공론의 장을 만들어 거기에 맡기자고 많은 이들이 직간접 호소 드렸다. 더욱이 당신이 딸이기 때문에 당사자나 다름없다. 그런데 자꾸 나서면 정당한 부분조차 객관적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받고 싶으면 싶을수록 당사자는 뒤로 물러서고 학계나 관련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게 했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제대로 조명하려면 왜 다른 제3세계-저발전국가는 다 실패했는데, 우리만 거의 유일하게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가 됐는지 그 이유를 리더십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된다. 그래서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경제학자, 정치학자의 참여도 필요한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또 편 가르기가 벌어지는 건 대통령, 여당, 야당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 갖고 정치하는 어른들끼리 이리 싸우는 것이야말로 역사에 죄를 짓는 짓이다."

- 지난 대구시장 선거 때 이념갈등 치유를 명목으로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 대해 ‘정치적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끌어 온 산업화와 민주화세력, 두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무한 대립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이 반복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이제는 두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광주에 김대중 컨벤션 센터가 있듯이, 대구에도 박정희 컨벤션을 만들자, 그래서 당당하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드러내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라는 게 제 주장이다. 지난 해 대구시장 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과 협력해 대구를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대구에 야당 출신의 시장이 나오면 여야가 협력해서 대구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야당 시장 당선이 대박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거다. "

-대한민국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국민 의식 변화, 제도 개혁, 지역균등발전 중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역주의적 구도를 허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제도는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 같은 사표가 방지되는 선거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아무리 열세지역이라도 정당이 받은 득표에 비례해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 지역 간 균등발전은 어쩌면 정치적 지역주의가 먼저 허물어졌을 때 그에 따른 결과로 이뤄질 문제다. 지금 지역내총생산 지표인 1인당 GRDP를 보면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16위 맨 꼴찌가 대구다. 그런데 15위도 광주다. 지금 지역주의의 아성이라는 두 도시가 꼴찌를 다투고 있는 셈이다. 반면 충남은 2위다. 왜 그럴까. 충남은 여야는 물론 때로 충청 기반의 세력까지 천하삼분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역적 할거주의부터 깨야 지방과 지역이 활력이 돌고 발전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균등 발전은 지역주의 타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김부겸, 그는 누구인가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은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7년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또다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2번이나 제적됐지만 1987년에 졸업장을 받았다.

1992년에도 `이선실 사건'에 연루돼 불고지죄로 구속되는 등 3번의 군사정권에서 모두 구속되는 시련을 겪었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1991년 3당합당에 반대한 세력이 남은 `꼬마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막내로 역할했다.

1997년 통추가 해체될 때 한나라당에 합류한 뒤 2000년 군포에서 배지를 달았고 당내 소장 개혁파로 활동했다.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고 이후 17대, 18대 의원에 당선됐다.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나온 그는 지난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 극복을 주창하며 지역구인 경기 군포를 떠나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이 선거에서 대구 수성갑 지역에 야당 간판을 달고 출마, 이한구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40.4%의 지지를 얻는 기염을 토했지만 석패했다. 지난 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도 대구시장에 출마해 40%가 넘는 지지를 얻으며 ‘지역주의 극복’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내년 20대 총선에서도 대구수성갑에서 대선주자급 여당 후보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 맞서 힘겨운 빅매치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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