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이자 'YS의 분신'으로도 불렸던 김덕룡 겨레의숲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민주화 시대는 꼭 올 것’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대한 확신과 국민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바로 이것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했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22일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내내 빈소를 지키고 있는 김 대표는 23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YS의 가장 큰 업적으로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뤄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일이 아니겠냐”며 민주화에 쏟았던 열정과 신념․의지를 꼽았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자부심을 가졌던 자신의 업적에 대해 “취임 이후에 많은 개혁을 했지만 금융실명제라든가 공무원 재산등록 등으로 해서 부패를 척결하고 부패를 막는 역할을 했다”면서 “무엇보다도 당시에 군사 쿠데타 위험이 항상 있었는데 바로 그런 쿠데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의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다는 것”을 꼽았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 시절이었던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비서실장으로 그의 곁을 지킨 최측근으로 문민정부 출범 후 제1정무장관을 맡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특보를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상당수 상도동계 인사들과 달리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친야성향 모임인 '국민행동'의 전국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3일간의 단식투쟁을 지켜보면서 그 분의 성격상 도저히 끝내실 것 같지 않고 ‘정말 저러다가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이 컸다”며 “1979년 의원직 제명을 당했을 때는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형무소에서 복역중이었는데, 아무 역할도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슬퍼런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불꽃같았던 YS의 정치역정은 언제나 ‘직선'이었지만, 내면은 아주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고 김 대표는 회고했다.
김 대표는 “비서들이나 주변사람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 아무리 바쁠 때라도 ‘그러면 가서 쉬어야지’ 하며 다독이던 인간적인 분이셨다”며 “정치하다 보면 동지들이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도 다시 돌아오면 ‘함께 해야 한다’며 정말 스스럼없이 받아들이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 하지 않았다. 특히 철두철미하게 시간 약속을 지켰고, 그 때문에 회의도 정각에 시작하는 정당문화도 자리가 잡혔다”면서 “YS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무척 싫어했고, 늘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일찍 왔다."고 말했다.
'인사는 만사'라며 용인술을 중시했던 김 전 대통령은 “‘정치라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결국 좋은 사람을 모아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다”며 “‘그럼 좋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사람이냐? 물론 능력은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거짓말 하지 않고 약속 지키는 사람, 그렇게 살아온 사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모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두 분은 영원한 경쟁자였다. 경쟁하면서 협력하기도 했고 협력하면서 경쟁하기도 했다”면서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입원해 계실 때 떠나기 전에 우리가 경쟁했던 사람이지만 서로 화해를 하면 지역분할구도로 분열돼 있는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고 직접 병문안을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유언처럼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메시지에 대해 “ 오늘 우리 정치가 정말 너무 대립과 갈등으로 젖어 있는데, 서로 타협하고 대화하는 정치로 국민을 화합으로 이끌어내는 정치가 돼야 한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걸었던 족적을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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