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3일 개봉하는 영화 ‘극적인 하룻밤’ 속 캐릭터 정훈과 윤계상은 닮았다. 영화는 전 애인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정훈(윤계상 분)과 시후(한예리 분)를 통해 지질한 연애 을(乙)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른 남자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전 여자친구에게 모진 소리 한번 못하고 “셀카 찍자”고 하는 정훈과,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며 죽음을 결심한 시후가 만나 그야말로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배신감과 상실감을 육체적 쾌락으로 잊은 두 사람은 “커피 쿠폰에 도장 10개를 채울 때까지만 더 만나자”는 요상한 약속을 하고 만남을 이어가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끌리기 시작한다. 사랑을 놓친 전과가 있는 정훈은 또 고뇌한다. 순서가 바뀐 이 관계가 맞는 건지, 계약직 교사마저도 잘려 백수가 된 내가 연애를 해도 되는 건지.
“사서 걱정한다는 면에서 정훈이와 저는 많이 닮았어요. 젊은 시절의 저는 더 그랬죠. 확실하게 잘하는 것도 없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열등감은 기본이고 ‘god는 아이돌이라 평생 가지 못 할 텐데 나는 나중에 뭘 하면서 가정을 꾸려야 하나’ 항상 걱정했어요. 그렇게 우울증에 빠지면 한없이 작아진 내가 싫고 그래서 애인과 또 싸우고 헤어지고를 반복했죠. 반면 여자들은 참 현명하고 용감해요. 영화 속 시후도 그러잖아요. ‘아, 누가 너랑 결혼한대? 연애하자고, 연애.’ 남자들은 참 멍청한 게 사랑에 빠지면 이 여자를 어떻게 책임질 지부터 걱정한다니까요. 저만 그런가요?”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돼요.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상상하면서 미리 아프고 상처받았거든요. 뭘 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20대 때 말이에요. 지금은 조금씩 놓으면서 사는 법도, ‘이 길이 아니면 안 돼’가 아니라 ‘이 길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법도,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사람이 재산이에요. 서로 돕고, 의지하고, 만나야지만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 그래야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요. 아직 성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확실히 행복해지기는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요.”
그래서 ‘극적인 하룻밤’을 선택했다. 몸 파는 남자들의 밑바닥 같은 삶을 담은 ‘비스티 보이즈’,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의 곤혹을 이야기한 ‘집행자’, 휴전선을 장대 하나로 넘으며 분단의 현실을 목도한 ‘풍산개’를 거쳐 ‘극적인 하룻밤’에서 만난 윤계상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작품에 메시지가 있어야 출연을 결정한다’는 배우 윤계상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걱정 좀 그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 시대의 청춘에게요. 삼포세대, 오포세대…요즘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이 나오겠느냐마는 그래도 오늘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막말로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까마득한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보내면 너무 아깝잖아요. 가끔은 틀려도 괜찮아요. 시작이 안 좋았을지라도 끝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원나잇으로 시작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된 정훈과 시후처럼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뭐가 중요하겠어요.”
윤계상에게도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노코멘트하겠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남사스러워하는 시절이 있었는데 원나잇을 소재의 영화가 나온 것을 보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통용되는 것 같다. 나도 이해는 한다. 결국 둘의 사랑이 이뤄졌으니 말이다. 결코 사랑하지 않으면 ‘그게’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god를 하던 시절부터 가수 윤계상 말고, 사람 윤계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근데 리얼 관찰 예능프로그램을 나가기에는 제가 또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그러니까 뭐 사비라도 들여야죠. 하하. 제가 좋아하는 것을 모아놓는 것이 저를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작은 공간을 공사하는 데 4개월이 걸렸어요. 하다 보니까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거기 있는 제품은 모두 제가 직접 고른 거예요. 수익금은 기부하려고 했는데 적자네요.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감당 안 되면 접으면 되죠. 하하.”
인터뷰 오기 전 윤계상은 인스타그램에 “졸려”라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홍보에 god 연말 콘서트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다. 예전과는 달라서 가사 외우는데도 한참이 걸리는 요즘이지만 행복하단다.
“최근에 라디오에 나가서 그냥 툭 뱉었는데 퍽 마음에 드는 말인데요. 연기 활동은 누군가에게 열심히 만든 선물을 주는 느낌이고, 가수 활동은 선물을 받는 느낌이에요. 선물이라는 게 줄 때도, 받을 때도 행복하잖아요. 제가 god 팬이라면 우리가 왜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산전수전을, 우리의 스토리를 모두 알아서가 아닐까요? 저희가 뭐 대단하게 스타성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최근에 식당에서 밥 먹는 콘셉트로 god 인터뷰를 했는데요. 제가 원래 카메라 앞에 있으면 의식이 돼서 뭘 편하게 못 먹는데 그날은 저도 놀랄 정도로 밥이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멤버들을 스윽 봤더니 카메라 앞인데도 대기실 모습 그대로예요. 쭌형(박준형)은 말하느라 바쁘고, 태우는 ‘이제 나도 애가 셋이다. 애 취급 말라’면서 소리 지르고… 참 좋았어요. 우리가 멋지지 않다는 걸 세상이 다 알아서 멋진 척할 필요 없다는 게요.”
god에서 탈퇴하고 배우로 전향한 것이 2004년 11월이니 연기를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윤계상은 god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god가 재결합했을 때 뭉클함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강력한 파급력, 어마어마한 한방이 아니라 뭉근한 불로 우려냈다고 할까…세월이 겹겹이 쌓인 느낌이에요. 헛된 시간은 없다는 것을 알았죠. 배우 윤계상도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오겠죠? 대중에게 나의 역사를 돌아보게 할 만한 때요. ‘윤계상이 이 작품에 오기까지 이런 길을 걸었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할만한 캐릭터요. 그때까지 진득하게, 천천히 연기하겠습니다. god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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