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 전자업종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 씨(35)는 지난달 아내의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할 계획이었으나 이내 뜻을 접었다. 김 씨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사회의 관념적 시선과 업무공백에 따른 다른 직원의 부담 가중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남성 육아휴직 보장기간은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최상위다. 하지만 회사내에서의 눈치, 사회적인 시선 등을 이겨내고 휴직계를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용감한 아빠'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족 데이터베이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아버지에게만 주어지는 유급휴가'는 52.6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9주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OECD 국가 가운데는 일본(52주)이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기간이 길었고 프랑스(28주), 룩셈부르크(26.4주), 네덜란드(26.4주)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어느 국가보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권장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제도 활용률은 낮아 '외화내빈(外華內貧)'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0~2014년까지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819명, 1402명, 1790명, 2293명, 3421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전체 육아휴직자 7만6833명 가운데 남성은 4.45%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의 경우 남성의 육아휴직자 비중은 2212명으로 상승, 전체 육아휴직자의 5.11%를 차지했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5%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나,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경우 지난해 '아버지에게만 주어지는 유급휴가' 기간은 각각 14주와 13주로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짧았지만, 전체 육아 휴직 사용률 중 남성의 비중이 각각 21.2%와 28.5%(2013년 기준)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프랑스의 경우 무려 62%의 남성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기업 유형별로는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성 육아휴직자 3421명 중 1814명(53%)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보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환경이 더욱 미흡하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남성 육아휴직은 최근 글로벌 대표 기업들 사이에서 직원 복지 정책의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과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스위스는 최근 정규직 여부와 성별을 불문하고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페이스북의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솔선해 2개월의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남성 육아휴직 체계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들어 삼성, 롯데 등 대기업이 육아휴직 기간을 기존 1년에서 최장 2년으로 확대하며,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 또한 급격히 감소한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 78%가 육아휴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53.1%), 경제적으로 힘들어서(31.5%), 승진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10.3%) 등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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