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이 사진을 한번 봐주십시오. 저에게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인물입니다"
지난 2010년 6월, 손정의 사장은 소프트뱅크 창립 30주년 주주총회에서 두 시간에 걸친 '소프트뱅크의 30년 비전'을 발표해 마무리하려는 찰나, 오래된 흑백사진 1장을 무대 뒤 화면에 띄웠다.
손 사장은 "14세 나이로 일본에 건너 온 내 할머니"라고 사진의 주인공을 소개하며, 자신이 어렵게 자란 옛 기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내 할머니는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국적으로, 일본어도 모르고, 의지할 사람도 없이, 지금으로 말하면 중학생 소녀가 이국땅을 밟아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손정의 사장은 재일교포 3세로 아버지 손삼헌과 어머니 이옥자의 차남으로 일본 큐슈(九州) 사가현(佐賀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7년에 내가 태어난 집은 기차가 지나 다니는 선로 옆 공터에 불법으로 지어진 판잣집이었다"면서 "불법 주거지였기 때문에 호적에는 '무(無)번지'라 표기됐다"며 자신을 무번지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유난히 자신을 사랑해주던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다는 그는 "할머니는 내가 3~4살 때 매일처럼 '정의야 산책가자'며 리어커에 태워줬다"면서 "부모님은 늘 일터에 나가 집에 없없기 때문에 나를 돌봐 준 사람은 할머니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 리어커는 검정색. 돼지 사료를 함께 실었기 때문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리어커에 타는 즐거움으로 할머니가 역 앞 식당에서 사료로 쓰기 위한 잔반을 받아 오는 길을 따라 나섰다. 그는 "리어커에 태워 준 할머니가 너무 좋았고, 그 날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할머니가 창피함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손 사장은 그토록 좋아했던 할머니를 싫어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할머니가 바로 김치였기 때문이며, 김치가 바로 한국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국 국적'과 관련해 여러가지 힘든 일과 차별을 경험했지만 끝내 그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어린 나이에 차별을 경험해 상처를 받자 숨어 지내게 됐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본명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로 살아갔다. 차별의 상처는 더욱 더 할머니를 멀리하게 하고, 할머니를 피해다니게 만들었다.
그 때 아버지가 토혈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가족의 위기'가 찾아왔다. 형은 학업을 중단하고 병원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터에 나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사업가가 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업가가 되기 위해 미국에 건너갈 뜻을 밝히자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매일 울었고, 친구와 선생님 모두말렸다. 친척들도 "아버지가 누워있는데 자기자신 만을 위해 미국에 가겠다는 것이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것"이라며 양보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고민해 온 국적문제와 차별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나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모든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마음 속에 굳게 다짐했다.
그는 결심을 굳힌 후 할머니를 찾아가 그 동안의 일을 사과하며 "나를 한국에 데려가달라"고 말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조상의 나라를 보고 싶다"며 약 2주 동안 한국의 대구를 찾았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챙겨 온 헌옷가지들을 친척과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헌옷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그것을 나줘 줄 때의 할머니의 미소. 할머니의 생전 입버릇이 “모두 다른 분들 덕분이었다”며 "할머니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고 가르쳤다. 이날 발표회에서 그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자"고 호소했다.
그가 강조했던 '소프트뱅크 30년 비전'은 바로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30년 비전에는 대구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헌옷을 나줘주며 말했던 할머니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