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9시. 한 할머니(81)가 작은 손가방을 들고 부산대 대학본관 1층 발전기금재단 사무실을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는 부산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해달라며 들고 온 손가방 속에서 자신의 유언장과 함께 꾸깃꾸깃 뭉텅이로 된 현금 1000만원을 기부했다.
할머니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딱히 친지도 없어 외동딸 하나만 키우며 의지하고 살아오던 중, 부산대 사범대 80학번 학생이었던 자신의 딸이 졸업을 한 학기만 남겨둔 4학년 1학기(1984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딸이 못다 이루고 간 학업의 한(恨)을 대신 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결심, 이후 파출부 생활과 기초생활수급으로 어렵게 살면서도 생활비와 용돈을 아껴가며 30여년 동안 한 푼씩 모은 돈 1000만원을 이날 부산대에 기부한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는 지난달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조차 불편한 상황이 되자 이웃집 동(洞)대표에게 동행을 부탁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찾아온 것이다.
할머니는 "딸하고 살 때가 너무 행복했는데 아직도 갑작스럽게 떠나간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내 탓인 것만 같다"며 "딸의 학업에 대한 한을 이제 대신 풀어준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액수가 너무 적어서 학교에 미안할 뿐"이라며 자신의 기부를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할머니는 이날 기부금 1000만원과 함께 본인이 2년 전 손수 작성해둔 유언장을 가져와 컴퓨터 글씨체로 다시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친척도 많지 않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 미리 작성해두고 있다는 할머니의 유언장에는 "(만약 내가)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아무런 의료조치도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대로 가게 해주세요. 장례식은 연락할 사람도 올 사람도 없습니다. (…) 집 전세금이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내가 신세진 동사무소 복지과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돼 있었다.
부산대 발전기금재단 관계자는 "할머니에게 학교에서 준비한 각종 고마움의 사은품과 여러 가지 예우를 해드리려 했으나 할머니는 한사코 마다하고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만 되풀이하고 돌아갔다"며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애틋한 할머니의 마음과 나눔 정신은 널리 알려져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훌륭한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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