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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작은 별' 세계 장애인 복지에 희망을…고 강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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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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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평군, 고 강영우 박사 뜻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

고(故) 강영우 박사.[사진=양평군 제공]


아주경제 임봉재 기자 = 경기 양평군(군수 김선교)은 최근 고인이 된 양평지역 출신 강영우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2013년 고인의 유품을 기증받아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에 전시하고, 고인의 생가 터에 표석을 세워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이어 2014년 10월 기념사업회를 창립했고, 이달 교육관 건립과 함께 강 박사의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고 강 박사는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한국계 최초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역임했다.

1944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나 13세 나이에 축구시합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실명선고를 받고 맹인이라는 장애를 안게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강 박사는 실명으로 인해 어머니까지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보내게 됐다.

생활고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누나마저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나자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은 철물점 점원, 여동생은 고아원, 고인은 양평의 시골교회로 뿔뿔이 흩어지는 절망을 겪게 된다.

이런 불우한 삶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았던 강 박사는 같은 또래보다 5년 늦게 맹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맹학교를 졸업하면 주로 안마사나 점장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강 박사는 장애의 삶을 뛰어넘기 위해 학업에 매진,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연세대 교육과에 진학한 뒤 차석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국제로터리재단 장학생에 선발되며, 한미재단과 국제로터리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의 길을 오르게 됐다.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심리학 석사, 교육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인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가 된다.

1977년에는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특임교수, 1992년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창립 회장, 1996년 루즈벨트 재단 고문 및 UN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1998년 굿윌인더스트리 국제본부 이사를 거쳐 한국인 최초 미국 4성 장군의 직위에 해당하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에 오른다.

2000년 미국저명인사사전, 2001년 세계인명사전, 2006년 루즈벨트재단선정 세계를 움직이는 위인 127인 등재, 1997년 자랑스러운 재외동포상, 2002년 아시아계 미국인 총연맹 공로상, 2007년 연세대학교 동문회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2008년 피츠버그대학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상 등을 수상했다.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영광', '지혜가 이끄는 삶',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등 13종류의 책을 펴내는 것을 비롯해 방송활동, 양평군 강연, UN본부 연설, 청와대 및 국회 강연 등 수많은 강연과 연설로 국내·외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 박사가 있기까지는 또 다른 공로자가 있었다. 바로 석은옥 여사다.

석 여사는 강 박사의 맹학교 시절 자원봉사자로 처음 만나 온갖 편견을 넘어 강 박사를 뒷바라지 했고, 곧 결혼을 한다.

석 여사의 본명은 석경숙으로 석은옥이란 이름은 결혼기념 반지를 대신해 선물한 강 박사가 살고자 했던 미래의 비전이었다고 알려졌다.

'석(石)'의 시대 10년은 돌밭을 걸어가는 것 같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시대'이며, '은(銀)'의 시대 10년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녀를 기르며 공통된 이상을 구현해 나가는 시대, '옥(玉)'은 사회에 봉사하는 시대를 뜻하는 것으로 석의 시대부터 옥의시대까지 인생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실제로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가난한 맹인 고아 소년에서 봉사를 받는 삶이 아닌 봉사하는 삶을 꿈꾸고 누군가에게 기적과 같은 삶이지만 실천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고 강 박사.

케네디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역대 대통령만 8명이 포함돼 있고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루즈벨트재단이 선정한 127명의 공로자에 포함됐던 강 박사는 췌장암을 진단받아 2012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고인이 될 때에도 국제로타리재단 평화센터 평화장학금 25만 달러(한화 2억9000여만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실천하며 마지막까지 세계인들의 가슴에 희망과 사랑을 심어줬다.

고 강 박사는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어 좌절을 희망으로, 시련을 영광으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인류에게 인생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삶을 교훈을 줬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고, 세계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

김선교 군수는 고 강 박사의 뜻과 정신을 후세에 전승하기 위해 ▲강영우박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구축 ▲시각장애인촬영대회 개최 ▲특별기획전 ‘희망을 보는 소년’ 강영우 전시회 개최 ▲강영우 박사 애니메이션 제작 ▲강영우 박사 기념 인권 웅변대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김 군수는 "장기적으로 고 강영우 박사기념사회 사단법인 등록과 세계청소년수련센터를 건립해 고 강 박사의 생전의 뜻인 '사회적 약자와 청소년들에게 주는 희망과 꿈'을 군정을 통해 펼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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