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봉철 기자 = “변방인 다롄(大連)에서 시작했지만 내년에는 심장부인 상하이(上海)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신우철 청청인터내셔날 대표(49)는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웬만한 도시에는 한국 기업들이 다 진출해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어차피 경쟁을 해야 된다면 가장 중심도시인 상하이에서 제대로 맞붙어 보겠다”고 밝혔다.
청청인터내셔날은 2011년에 설립된 ‘젊은 회사’다. 아가애(유아 생활용품), 아파타이트(구강용품), 로즈아이(미용용품) 등 3개 브랜드를 OEM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해 미국, 태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 15개국에 수출 중이다.
특히 매년 200% 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며,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독자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중소기업의 약점인 낮은 인지도 극복을 위해 아이코닉스와 손을 잡고 아가애(我珂愛)뽀로로 시리즈를 출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내에서의 뽀로로 캐릭터 인지도 상승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 대표는 원래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시작해 지점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었다. 보험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2년 동안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뜻하지 않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금융 시장이 붕괴되면서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미국 본사에서는 실적 저조자에 대한 구조조정 명령이 떨어졌고, 자신이 아끼던 직원들은 스스로 내쳐야 된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졌다.
신 대표는 “보험 영업을 계속할 수도 있다”면서도 “무형의 가치를 파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결국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고 가치 추구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 가운데 우연찮게 중국 시장을 알게 된 신 대표는 중국어도 못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갔다. 다년 간의 보험 영업은 그에게는 큰 경영 자산이 됐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당시만 해도 식음료는 중국에도 유통망이 이미 구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은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다롄에 청청무역이라는 이름으로 3평짜리 매장을 하나 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직원 두명과 낮에는 일을 하면서 밤마다 중국인 과외선생님을 모셔놓고 중국어 매진했다.
신 대표는 “역시 언어가 문제였다”면서 “단순한 전달자인 통역만으로는 비즈니스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 유아 생활용품에 대한 비전을 높고 보고 있다. 중국이 산아제한 방침을 철회하면서 출산인구가 폭발하고 있어서다. 신 대표는 “중국의 평균 출산인구가 2000만명”이라면서 “한국의 평균 출산인구 45만명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청인터내셔날은 중국 시장 공략과 더불어 동남아 시장 개척에도 나선다. 실제로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유아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신 대표는 “가족이랑 떨어져 중국에서 6위안 짜리 식사를 하던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이윤 추구와 가치 나눔을 함께 생각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우철 청청인터내셔날 대표(49)는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웬만한 도시에는 한국 기업들이 다 진출해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어차피 경쟁을 해야 된다면 가장 중심도시인 상하이에서 제대로 맞붙어 보겠다”고 밝혔다.
청청인터내셔날은 2011년에 설립된 ‘젊은 회사’다. 아가애(유아 생활용품), 아파타이트(구강용품), 로즈아이(미용용품) 등 3개 브랜드를 OEM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해 미국, 태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 15개국에 수출 중이다.
특히 매년 200% 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며,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독자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신 대표는 원래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시작해 지점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었다. 보험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2년 동안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뜻하지 않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금융 시장이 붕괴되면서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미국 본사에서는 실적 저조자에 대한 구조조정 명령이 떨어졌고, 자신이 아끼던 직원들은 스스로 내쳐야 된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졌다.
신 대표는 “보험 영업을 계속할 수도 있다”면서도 “무형의 가치를 파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결국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고 가치 추구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 가운데 우연찮게 중국 시장을 알게 된 신 대표는 중국어도 못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갔다. 다년 간의 보험 영업은 그에게는 큰 경영 자산이 됐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당시만 해도 식음료는 중국에도 유통망이 이미 구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은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다롄에 청청무역이라는 이름으로 3평짜리 매장을 하나 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직원 두명과 낮에는 일을 하면서 밤마다 중국인 과외선생님을 모셔놓고 중국어 매진했다.
신 대표는 “역시 언어가 문제였다”면서 “단순한 전달자인 통역만으로는 비즈니스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 유아 생활용품에 대한 비전을 높고 보고 있다. 중국이 산아제한 방침을 철회하면서 출산인구가 폭발하고 있어서다. 신 대표는 “중국의 평균 출산인구가 2000만명”이라면서 “한국의 평균 출산인구 45만명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청인터내셔날은 중국 시장 공략과 더불어 동남아 시장 개척에도 나선다. 실제로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유아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신 대표는 “가족이랑 떨어져 중국에서 6위안 짜리 식사를 하던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이윤 추구와 가치 나눔을 함께 생각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