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그룹 발전과 대외적 신뢰 및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자동차는 그룹 울타리내에서 발전해야 한다. 앞으로 제철사업과 미래 주도산업인 우주 및 항공·통신산업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새로운 분야에 적극 진출하겠다. 그동안 제조업 분야에만 주력했지만 앞으로 영업과 자금조달을 위해 금융부문 강화가 중요할뿐더러 금융산업은 잘 육성하면 제조업 못지않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기업의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선진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를 도입키로 했다.”
1996년 1월 3일 오전 8시 30분.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 지하 대강당에서 열린 현대그룹 회장 취임식을 겸한 시무식. 전국 50개 사업장에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 된 이날,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모체인 현대그룹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2016년은 정 회장이 ‘그룹 회장’이 된지 20년을 맡는다. 1969년 현대자동차 평사원으로 입사한 드는 그는 1974년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에서 독립한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으로 최고경영자(CEO)로서 첫 발을 내딛은 뒤 현대정공과 현대정공 현대강관 현대산업개발 현대기술개발 인천제철 등을 맡아 이른바 그룹내 ‘MK사단’을 만들어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와 건설, 중공업 등 그룹 주력사를 직접 담당하지 않았던 정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올라 설 수 있었던 배경은 MK사단에 속하는 다양한 분야의 계열사들을 통해 얻은 경영 노하우를 창업주인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정 회장이 MK사단을 통해 만들어낸 주요 제품은 자동차부품·컨테이너·공작기계·철강소재·SUV·미니밴·요트·철도차량·지프차·헬리콥터 등이다. 이 가운데 1988년 5월 자체개발한 골프카는 정 회장이 완성차 사업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발점이었다. 그가 만든 골프카는 승차감을 좋게 해주는 ‘독립현가장치’를 적용해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를 이뤄냈다. 또한 골프카에는 자체 개발한 소형엔진이 탑재되었다. 승차감 좋고 고장 안 나는 자체 개발한 엔진을 적용한 골프카는 품질과 모듈화 효율 좋은 엔진이라는 자동차 개발 철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노하우가 결집된 역작이 2008년 1월 8일 첫 선을 보인 ‘제네시스’다. 2세대 제네시스를 출시한 뒤 현대차는 2015년 고급 대형차 라인업을 ‘제네시스’ 단일 브랜드로 통일했다.
20년 전 취임사에서 제시한 전략사업 중 정 회장은 자동차 사업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켰으며, 제철사업(일관제철소 건설)을 성공시켰고, 금융사업도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남은 한 가지는 항공우주사업. 이 사업은 정 회장이 상당한 애착을 갖고 추진했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항공사업의 통폐합 조치를 통해 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손을 떼야 했다. 당시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현대차는 10.0%의 지분을 갖고 있다. KAI를 현대차가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부문 수직 계열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동수단과 관련한 모든 사업군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미래 신성장사업 발굴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항공우주사업은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4일 오전에 열릴 현대차그룹 시무식에서 정 회장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연말 그룹 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도 영업·재무통 보다는 연구개발(R&D) 인재들에게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이는 자동차 사업을 고도화하면서 자동차에 버금가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어떤 사업에 눈도장을 찍었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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