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 성공 스토리] ① '망상가'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망상으로 치부되던 꿈 현실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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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0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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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
 
'중화 민족을 위해 분투한다'는 뜻을 담은 '화웨이(華爲)'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국 1세대 스마트폰 기업이다. 화웨이는 통신장비 등 유관 사업의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조기에 선두권을 형성했고,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이라는 거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애플과 삼성이라는 과점체제를 위협하는 존재감을 나타냈다.

한때 화웨이는 중국 2세대 스마트폰 기업으로 불리는 샤오미에 밀려 주춤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지난해 다시금 1위 자리를 석권해 두각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화웨이는 초저가 휴대폰부터 하이엔드급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갖춰 올해는 유럽 무대를 넘어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선언해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다.

세계 3대 스마트폰 제조사로 우뚝 선 화웨이의 귀추가 주목되는 만큼 화웨이 성장을 진두지휘한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혁신과 노력을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아주경제 박정수 기자 = 화웨이 창업 초 런정페이 회장은 10년을 바라보고 세계 통신 제조업계가 삼분천하가 될 것이며, 그 가운데 하나는 화웨이의 몫이라 예언했다.

중국 스마트폰 1위 업체인 화웨이는 창업 초기 뜻밖에도 무역업으로 회사를 유지했다. 1987년 단돈 2만위안(약 400만원)을 손에 쥐고 선전(深圳)의 한 주민 아파트에 둥지를 튼 화웨이의 창립 멤버는 6명이었다. 군인(인민해방군) 출신인 런정페이 회장은 통신분야 기술장교로 복무하면서 연구·개발에는 밝았지만 사업은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런정페이 회장은 통신 제조 분야에서 문외한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런정페이 회장은 '개인 자영업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회사를 세웠지만 뚜렷한 발전방향은 없었다. 이에 용존 공기 부상장치, 화재경보기 등을 팔았고, 다이어트 약까지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런정페이 회장은 지인을 통해 광공업 기업과 호텔 등에서 소형 전화교환기를 많이 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홍콩 훙녠 공사가 생산하는 HAX교환기(구내전화교환망)를 중국에 유통하기로 했다.

소형 전화교환기의 인기에 가격이 크게 오르자 런정페이 회장은 HAX교환기를 분해해 화웨이 독자 생산품인 'HJD48'(48개 포트를 지원할 수 있는 통신기기)을 출시했고, 1년 만에 화웨이 총 매출은 1억 위안을 돌파했다. 이후 1992년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부속 정보기술학원의 우장싱 원장이 회선용량이 만 단위에 이르는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동료의 반대로 인해 창업멤버의 절반이 지분을 챙겨 화웨이를 떠나기도 했다.

화웨이는 1993년 본격적으로 기기 제조에 나섰으나 중국 소형 교환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는 큰 수익은 나지 않았다. 당시 런정페이 회장은 "우리는 아마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될 것"이라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회장의 '허풍'이 실현될 것이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후 화웨이는 중국 내 17개 전신국과 합자해서 모베이커전원유한공사를 세우는 협상에 성공했고 3900만 위안을 대출받아 막혔던 자금 문제에 숨통을 틔웠다. 런정페이 회장은 전자교환기 기술 개발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했고, 마침내 고유의 핵심기술을 담은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했다.

1994년부터 화웨이는 혼돈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런정페이 회장은 1994년 10월에 열렸던 베이징 국제통신박람회에서 화웨이 부스에 중국 국기를 꽂고 "10년 뒤에는 지멘스, 알카텔, 화웨이 3개 기업이 세계 통신 장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바이어들을 만나 호언장담했다. 이후 화웨이 최초의 디지털 프로그램 제어 교환기인 'C&C 08'이 장쑤성 쉬저우시 피저우현(江苏省徐州市邳州县)에서 개국하면서 상품과 기술이 전무하던 무역 시대에서 벗어나 새 발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1997년에는 화웨이가 쓰촨성(四川省) 전신국과 첫 번째 합자기업인 '쓰촨화웨이'를 설립했고, 그 결과 1996년에 4600만 위안이던 쓰촨성 매출이 반년도 채 되지 않아 5억3000만 위안으로 급증했다. 1998년부터는 톈진, 상하이, 산둥성 등 12개 전신국과 연이어 합자기업을 세웠다. 런정페이의 선택은 매출 극대화로 돌아왔다. 1996년 화웨이 총매출 26억 위안에서 1999년 120억 위안으로, 2000년에는 220억 위안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런정페이식 '삼분천하' 전략은 2016년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대로 적용, 애플과 삼성전자라는 양강구도에 화웨이는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 1억대 돌파'라는 도전장을 내밀며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화웨이는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2015년 스마트폰 출하량이 1억대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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