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 성공 스토리] ④ 런정페이 최대 위기이자 기회였던 시스코의 '화웨이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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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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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 (사진 출처- 바이두)]
 

아주경제 박정수 기자 = 화웨이의 성장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00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화웨이는 하버 네트워크와 시스코로부터 양면 공격을 받았고, 미국 정부와 매스컴의 간섭과 견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런정페이 회장은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쓰러졌고 암 수술을 두 차례나 받는 등 우울증을 동반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나 2003년은 화웨이에 악몽으로 기억되는 해이다. 1월 22일 전 세계 데이터 통신업계의 거두인 시스코가 화웨이를 상대로 난데없이 공세를 펼쳤다. 시스코는 화웨이를 지적 재산권 침해죄로 고소해 70여 쪽에 달하는 기소장을 제출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든 지적 재산권의 카테고리를 죄다 동원해 작성했다고도 전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스코는 미국 텍사스 주 동부 마셜(Marshall) 연방법원에 기소장을 접수했다.

게다가 미국의 국가 안보부터 불공정 경쟁에 이르기까지 '화웨이 때리기'의 소재는 나날이 다양해졌고, 화웨이를 '좀도둑'에 '기술 탈취범'으로까지 내몰았다. 또 보호주의 무역이라는 수단으로 미국 기업의 시장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화웨이를 미국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밀어내려 했다. 2007년 이후에는 화웨이가 이라크와 이란 등 반미 국가에 설비를 수출함으로써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본격적인 소송전이 시작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온갖 유혹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국 내 언론과 정부는 화웨이가 지원을 얻으려면 '민족기업을 수호하자'는 기치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화웨이 경영진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국제 재판인 데다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텍사스 주에서 사안이 진행되는 만큼 민족적 감정을 운운했다가 되레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무엇보다 위기를 잘 잡으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 런정페이 회장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법률 고문을 고용해 소송전과 언론전에서 시스코와 정면승부에 나섰다. 2년 가까이 진행된 법정 싸움에서 재판부를 비롯한 언론은 두꺼운 돋보기를 들이댄 채 화웨이의 이모저모를 캐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화웨이는 유럽과 미국, 심지어 정부 기관으로부터 번갈아가며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그때 있었던 화웨이의 수모를 두고 쓰리컴(3Com)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루스 클라플린은 '흥미진진한 한 편의 연극'같다고 표현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7월 화웨이와 시스코의 재판은 막을 내렸다. 화웨이와 시스코는 사과는 물론 별도의 배상 없이 서로 각자의 제품을 판매하고 각자 소송비를 낸다는 판결문에 합의했다. 그리고 시스코는 같은 문제에 대해 영원히 화웨이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에 서명했다.

이를 두고 런정페이 회장은 시스코가 화웨이를 위해 수십억 달러짜리 공짜 광고를 만들어 줬다고 설명했고, 화웨이의 국제화는 이어지리라 전망했다. 실제 2003년부터 화웨이의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승승장구했고, 서유럽과 북유럽 등 유럽 전체 대륙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본과 라틴 아메리카, 미국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결국 2010년 화웨이의 판매 수익 가운데 70%는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게 됐고, 시스코와 벌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화웨이에 위기이자 전환점이 됐다.

시스코가 화웨이를 고소하면서 생겨난 위기, 그리고 기회로 바꾸는 과정에서 화웨이는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2008년 런정페이 회장은 궁극적으로 '대기업병'이라 불리는 조직 피로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상대방이 화웨이에 대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자신을 단속하라 강조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20여 년 동안 한결같은 노력과 실천을 통해 자기반성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깨달았다. 국제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경영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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