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 (사진 출처- 바이두)]
그런 점에서 1997년은 화웨이의 역사상 분수령이 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업체의 경영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재무, 마케팅, 품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IBM, PWC, 헤이컨설팅, 브라운호퍼 등 서양 컨설팅 전문 그룹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프로세스와 경영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런정페이 회장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조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1997년 화웨이는 서양 출신의 고문을 대거 고용하고 서구식 혁신을 추진했다. IBM이 당시 화웨이의 경영 현황을 진단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미래 지향적인 고객 니즈에 대한 관심 부족, △비효율적인 반복 업무, △자원 낭비, △고비용, △부서 간 심각한 파벌 싸움 등의 문제가 곳곳에 자리했다.
결국 런정페이 회장은 "여러분에게 '미국 신발'을 신길 겁니다. 이를 위해서 미국 고문들에게 '미국 신발'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려달라고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초기 '해적문화'를 완전히 뒤집어엎은 조치에 기득권 중심의 저항 혹은 소극적인 반대에 부딪혔으나, 화웨이는 신발을 신기 위해서라면 발을 잘라내겠다는 각오로 엄격한 원칙을 발표했다.
이에 IBM은 화웨이에서 14년 동안 경영 혁신을 추진했다. 여기에 투입된 전문가만 70명으로,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300~600달러에 달했다. 14년간 화웨이는 경영 혁신을 뚝심 있게 추진했고, 혁신에 반기를 들거나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은 화웨이를 떠났다. 좌천당하거나 면직된 중·고위급 간부가 100명이 넘을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남다른 재능을 소유한 자로서 화웨이 성장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새 바람이 불면서 자리를 내줘야 했다.
가장 획기적이고 직접적인 조치는 2004년부터 도입된 '순환 최고경영자(CEO)' 제도다. 한마디로 최고경영기구 구성원들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CEO를 맡는다. 조직 전체의 균형적인 발전과 공동의 책임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런정페이 회장은 경영권마저 내놓은 상징적인 조치였다.
어디에도 보기 힘든 순환 CEO 제도가 실시된 후 화웨이 내부에 감독과 경쟁이 강화되고 각 사업부문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이제는 개인이 권력을 휘두르며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언제나 회의와 토론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개인의 권력, 권위를 부정해야 건강한 조직,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후 2006년 화웨이 총매출은 85억 달러로 뛰어올라 모토로라, 시스코시스템즈를 제치고 업계 5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해외 주문이 많아지고 금액도 커지면서 현행 재무관리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런정페이 회장은 2007년 다시 한 번 IBM과 손잡고 통합재무시스템 혁신을 시작했다. 더불어 2008년부터 액센추어 컨설팅과 손잡고 전 세계 300여 핵심 타깃에 대해 CRM을 시작했다. 이외에 화웨이는 9개였던 해외본부를 22개로 나눠 직원들이 현장에서 고객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결국 화웨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233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2009년에는 3세대(3G) 이동통신 기술의 절대 우위를 내세워 중국에서만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에릭슨의 뒤를 이어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서방의 통신기업과 업계를 '삼분천하'하겠다는 런정페이 회장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해 화웨이는 미국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397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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