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끝내 탈당했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 상징인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2일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 고문의 탈당으로 민주개혁진영은 친노(친노무현)계와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 운동권그룹과 비노(비노무현)계와 호남·중도그룹으로 재편됐다. 이로써 범야권의 두 축인 고(故)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이 결별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손학규계인 최원식 더민주 의원(초선·인천 계양을)도 같은 날 탈당을 결행했다. 비노·중도의 이른바 '호남발(發) 엑소더스'가 수도권으로 북상할 가능성이 한층 커진 셈이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문재인 더민주 대표는 이날 일곱 번째 인재영입 카드와 함께 내주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구성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權 "희망 없다는 양심 때문에"… '난닝구 vs 빽바지' 데자뷔
권 고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며 문 대표를 정면비판했다. DJ와 함께 55년을 함께한 권 고문이 탈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 고문 이외에 김옥두·이훈평·남궁진·윤철상·박양수 전 의원 등도 탈당계를 제출했다. 다만 이들은 국민의당에 바로 합류하지 않고 당분간 제3지대에서 야권 재편을 위한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권 고문의 탈당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애초 권 고문 등 당내 원로그룹은 지난달 문 대표에게 2선 후퇴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당 주류가 이를 거부하자 탈당 결심을 굳혔다.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 대표는 지난 5일 권 고문을 만나 탈당을 만류했으나, 돌아선 마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동교동에 뿌리를 둔 전병헌 최고위원도 11일 권 고문 탈당 만류를 위해 김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을 만났지만, 권 고문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말을 남긴 채 탈당했다. 전 최고위원은 "내 몸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권 고문의 탈당이 야권에 주는 '내부충격'은 크다. 이들의 분열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전략적으로 결합한 동교동계와 재야 운동권 세력의 결별이다.
'4자 필승론'으로 1987년 대선에 나선 DJ는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전면적 결합을 위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운동권에 '비판적 지지'를 호소했다. 이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태동의 계기가 됐다.
◆주승용·장병완 탈당 예고…文 "무척 아프다"
하지만 이들의 '불편한 동거'는 정치적 변곡점마다 정치권을 요동치게 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에는 '빽바지(열린우리당 창당파) 대 난닝구(새천년민주당 잔류파)' 논쟁에 빠지면서 야권 분열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여기에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특별검사제(특검)를 꺼내면서 양측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후 '빽바지·난닝구' 논쟁은 제2·제3의 갈등으로 변질됐다. 야당 역사에서 '역주행의 데자뷔'가 번번이 발생한 것이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때때로 이들은 물과 기름 같았다"고 회고했다.
다급해진 쪽은 문재인호(號)다. 호남 조직은 붕괴된 지 오래다. 최 의원의 탈당으로 127석이던 의석수는 115석으로 줄었다. 13일 주승용(전남 여수을)·장병완(광주 남구) 의원의 탈당도 예고됐다. 통상적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탈당할 경우 지방자치단체 소속 의원들이 동반 탈당한 점을 감안하면, 더민주의 호남 하부조직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표는 이날 일곱 번째 인재영입인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 양향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영입하며 맞불을 놨다. 권 고문의 탈당과 관련해서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 원심력의 본질인 계파 패권주의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 없는 인재영입은 사실상 '수성 전략'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문 대표의 인재영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권 고문 탈당에 대해 "DJ와 노 전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명확한 구분으로, 수도권과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맞불에 나선) 문 대표의 인재영입은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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