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아주경제 장윤정 기자 = 혈흔이 낭자한 살인도 없고 끔찍한 비명이 울러 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극은 내내 음산하고 어둡다. 보이지 않는 존재, 끝까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라는 이름에 짓눌려 배우도 관객도 숨쉬는 것조차 잊는다.
뮤지컬 ‘레베카’가 지난 2013년 초연 이후 다시 국내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초연된 뮤지컬 레베카는 핀란드, 독일, 헝가리, 일본, 루마니아, 러시아, 세르비아, 스위스를 거쳐 2013년 한국에서 제작, 초연됐다.
영국의 서스펜스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ㆍ1907-1989)가 1938년 출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미하엘 쿤체(대본 및 가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가 뮤지컬화했다. 뮤지컬보다 훨씬 앞선 1954년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레베카’는 한국 초연 이후 숨가쁘게 재연되고 있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중 하나다. 유럽 관객들은 물론 국내 관객들 역시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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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비밀은 간직한 주인공들, 그중에 유일하게 비밀이 없는 존재인 ‘나(I)’는 관객과 동화하며 역시 비밀은 간직한 맨덜리 저택의 곳곳을 누빈다. 아무도 죽은 레베카를 대신할 수 없다며 나(I)를 쫓아내려는 댄버스 부인, 나를 사랑하지만 때때로 레베카의 망령에 지배돼 광기를 내비치는 남편 막심, 저택의 고용인들까지 레베카와 나를 비교하며 나를 압박하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공포를 극복하고 마침내 맨덜리의 안주인으로 거듭나는 나의 성장에 관객들은 어느새 쾌감을 느낀다.
극의 백미는 2막 첫 장면 발코니씬이다. 나와 댄버스 부인의 이중창 ‘저 바다로 뛰어’는 뮤지컬 ‘레베카’의 클라이막스. 레베카의 방을 비추고 있던 무대가 순식간에 해체되고,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를 열창한 뒤 무대는 180도 회전하며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로 전환된다. 이때 댄버스 부인의 선 굵은 음성과 나의 청아한 고음이 어우러져 '저 바다로 뛰어'를 완성한다. 두 배우를 실은 발코니는 자동으로 움직여 객석의 바로 앞까지 이동한다. 이때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음산한 안개, 보랏빛 조명의 앙상블, 그리고 두 배우의 팽팽한 대립이 완성하는 앙상블은 관객을 섬뜩한 레베카의 세계로 끌어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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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뮤지컬 레베카는 완벽한 서사구조를 갖춘 이야기와 고유한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귀에 꽂히는 음악은 물론 무대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가장 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무대 망사막을 활용한 비주얼로 마치 풍경화를 보듯, 배우들과 망사막이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각적 효과는 여느 극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사막을 스크린 삼아 그림을 투영시키거나, 사막 바깥쪽과 안쪽을 활용해 배우들의 움직임에 명암을 주는 회화적 방식의 시도로 무대 미술을 한차원 업그레이드 시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비에 맞은 우산을 접고 저택으로 들어오는 장면, 발코니에 선 댄버스 부인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 등에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다. 물론 발코니가 180도 회전해 관객의 앞으로 전환하는 장면 역시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광기에 휩싸인 댄버스 부인이 맨덜리 저택을 불태우는 장면 역시 일렁이는 불꽃으로 모든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음산하고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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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차지연의 연기가 발군이다. 그녀는 뮤지컬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미소를 짓지 않는다. 댄버스 부인으로 완벽 빙의한 차지연은 폭발적인 가창력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어둡고 서늘한 댄버스 부인이라는 캐릭터와 완전히 하나가 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깊은 감정의 변화를 절묘하게 담아낸 강렬한 선율,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려한 무대 등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시너지의 뮤지컬 ‘레베카’는 오는 3월 6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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