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검찰 권력의 부당한 독주를 견제하고 피의자 인권 침해를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검사 평가제'가 시행 초기부터 '삐걱'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검사 평가제의 첫 결과를 공개할 당시부터 일선 검찰에서는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왔다.
변호사단체의 입김을 강화하려고 도입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려운 검사평가제가 '검찰권 견제' 대신 '수사의 공정성 훼손'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우수 평가를 받은 검사가 향응 수수 문제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처음부터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변호사단체들은 '검찰의 민낯'이 드러나 검사 평가제를 꺼리는 것이라며 이 제도의 결과가 검찰 인사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 전문가들은 양측 모두 제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괴리감이 커 제도의 공정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변협 "검사를 평가하는 자료, 검사 평가제 자료가 유일...검찰 인사에 반영돼야"
대한변협은 지난달 19일 사법사상 처음으로 검사 평가제를 시행해 우수검사 10명과 하위검사 10명을 선정하고 사례집을 공개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맡은 형사사건을 평가한 결과를 모은 결과다.
대한변협은 수사·공판 과정에 직접 참여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또는 수기 방식으로 평가표를 취합했다고 밝혔다.
검사평가표는 윤리성 및 청렴성, 인권의식 및 적법절차의 준수, 공정성 및 정치적 중립성, 직무성실성 및 신속성, 직무능력성 및 검찰권 행사의 설득력, 친절성 및 절차 진행의 융통성 등 6개 평가 항목으로 구성됐다.
대한변협은 평가 결과를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전달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해 검사 평가 결과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위검사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당사자에게만 결과를 통보했다. 하위검사 10명은 강압적인 태도로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나는 ○○지역에서 ‘또라이’로 알려졌는데 시간이 되면 당신 회사를 압수수색하겠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는 사례,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언급하며 압박했다는 사례, 고소인과 합의를 강요하며 “합의를 안 하면 당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사례도 있다.
변호인 선임계를 받아들이지 않아 피고인이 법적 도움을 받을 권리를 방해한 경우가 있었으며, 조사과정에서 변호인의 메모가 가능한데 큰소리치며 막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브로커로 의심되는 검사의 사례도 있었다.
대한변협 측은 “이 검사의 친·인척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수사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임을 알선하는 듯했다”고 밝혔다.
우수 수사검사 5명은 서울중앙지검 변수량(44), 차상우(46), 최인상(46), 장려미(34), 김정환(41) 검사다. 우수 공판검사 5명은 서울중앙지검 채필규(33), 박하영(42), 추창현(36), 김영오(42) 검사와 서울서부지검 오선희 검사(43)다.
우수 검사에 대해 대한변협 측은 “피의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충분히 주고 인격적으로 대우했고, 재판에서 무리한 증거 신청이나 감정적인 증인신문을 하지 않는 등 공정한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검사평가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우수검사로 뽑힌 5명의 우수 수사검사 중 1명은 외부인사에게 향응 접대를 받아 지난해 11월 징계처분돼 관보에 이름이 공개된 인물이다. 검사 평가제 도입이 발표될 때부터 “검사의 상대편에 선 변호사의 평가가 객관적일 수 있느냐”는 지적이 계속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협 측은 "제도의 미흡한 점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완할 계획"이라며 "법관 평가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잡아가듯이 검사 평가제도 미흡한 점을 보완하게 가면 검찰 인사를 하는데 있어 척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변협 측은 "현재 법관인사에 법관 평가제의 결과가 반영되고 있다. 검사 평가제도 검사를 평가하는 유일한 제도인 만큼 검찰인사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들 "검사 평가제가 수사 공정성까지 훼손"
검찰은 검사평가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선 검사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한변협이 발표한 자료를 받아 우선 검토하고서 의견을 내놓을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 삼륜'을 이루는 변호사 단체의 자료인 만큼 검찰의 자체적인 인사 평가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귀담아들을 지적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재경 검찰청의 한 중견 검사는 "지적에 합당한 면이 있다면 검찰 내부 평가에 적절히 참고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문제가 된 사례가 있는지,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은 불만과 우려감이 컸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를 대대적으로 공개하면 수사나 재판에 부당한 압력으로만 작용할 뿐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는 데는 별반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지방검찰청의 검사는 "주요 평가 항목으로 거론된 검사의 '청렴성'은 어떻게 수치화했을지 궁금하다"며 "재산 내역이나 감찰 자료 없이 변호사의 의견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권 행사의 설득력' 항목도 검사가 사건 실체와 달리 변호인이 원하는 대로 처분해 줬을 때 높은 점수가 나온다면 객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사는 "변호인을 쓸 형편이 안 되는 피의자나 사건 관계인을 조사하는 검사의 태도는 어떻게 평가될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원지방검찰청의 한 중견 검사는 "한두가지를 보고 검사를 간접적으로 평가한 결과가 검사 인사에 반영되면 검찰 내부에서 혼란이 올 것"이라며 "먼저 검사들의 공감을 얻는 제도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은 피의자뿐 아니라 고소인, 참고인 등 여러 당사자가 얽혀 있는데 어느 한 쪽을 변론하는 변호사의 의견만을 근거로 삼으면 실체와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십상"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대한변협이 검사 평가제를 추진할 때부터 '변호사 단체의 영향력 강화'라는 포석이 깔렸었기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는 "변호사단체가 제도를 시행하는 것부터 공정성이 훼손된 것이다. 대부분의 검사들이 이부분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중립적인 외부기관도 이 제도에 참여해서 공정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들의 개인적인 사견으로 검사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제도의 미흡한 점을 넘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평가제는 작년에 출범한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 체제의 선거공약 사항이었다. 물론 '검찰 독주 견제'라는 명분이 걸린 공약이었다.
그렇더라도 개별 사건에서는 당사자로 참여하는 변호사 단체가 이미 시행한 법관 평가제에 이어 검사 평가제까지 도입하려는 데에는 사법 및 수사기관에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속내가 담겼다는 주장이 검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법조 전문가들 "제도의 공정성 확보 시급...제도 자리잡기 쉽지 않아"
전문가들은 검찰 평가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검찰 내부에서도 인정할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전해 법률서비스개선회 실장은 "현재 이 제도를 놓고 검찰이 반박하는 부분이 공정성"이라며 "변호사들의 사견을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 외에도 공정성을 기하는 항목 등을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점차 제도를 보완하다보면 검찰도 인정하는 제도로 바뀔 것"이라며 "검찰 권력의 부당한 독주를 견제하고 피의자 인권 침해를 막는다는 점에선 제도 시행이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중견 판사는 "법관 평가제 시행 초기 당시에도 판사와 변호사간 생각이 달랐다. 변호사 사견으로 판사를 평가하는 걸 법원 내부에서 좋지 않게 봤다. 하지만 현재는 판사들이 법관평가 결과를 재판하는데 있어 참고사항으로 생각해 제도에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의 공정성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가 결과를 수사하는데 있어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이 같은 노력을 할 때 검사 평가제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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