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정부가 내놓은 1분기 경기부양책이 단기 대응에 그치면서 전문가들과 시장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위기를 피해가자는 정부의 판단에 한국 경제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번 1분기 경제대응 정책의 핵심인 개별소비세(이하 개소제) 재인하는 정부가 중장기 정책 수립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려운 현실에 처했는데 마땅한 부양 카드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21일 만에 경기대책을 내놨다. 1분기 경기부양을 통해 정부가 목표로 한 경제성장률 3.1%를 달성하고 소비절벽이 예상되는 내수 시장을 살려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에서 기대했던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개소세 인하는 없다”고 못 박았던 정부는 불과 넉 달 만에 재인하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가 경기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올해 1월에 소비절벽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해 지난해 소비부양책에서 개소세 연장은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1월에는 분명 소비가 줄어들겠지만 소비절벽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종료하려고 했는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왔다”고 해명했다.
◆땜질처방 ‘개소세’와 효과 없는 ‘조기집행’
3기 경제팀이 내놓은 1분기 경기대책을 보면 개소세 재인하와 재정의 조기 집행이 눈에 띈다. 두 대책 모두 낯설지 않은 정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개소세는 이미 지난해 4분기 5% 할인율을 적용하며 자동차 업계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개소세 인하는 소비진작이라는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개소세 인하가 종료된 1월 자동차 판매량을 보면 전달보다 확연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의 개소세 인하 카드가 확실하게 시장에 먹혔다는 의미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쌍용차, 르노삼성차 등 국내 5개사 완성차업체는 1월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한 총 10만6308대를 팔았다. 역대 최고 내수실적을 보인 지난해 12월(17만5263대)과 비교해 판매량은 39.3% 급감했다.
1월 판매량이 급감한 것은 개소세 인하 종료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국내 자동차업계 내수 판매량은 총 59만4707대로 전년 같은 기간(51만6334대)에 비해 15.2% 늘었다.
하지만 개소세 인하는 임시처방이다. 지난해 개소세 인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으로 악화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시장에서는 3기 경제팀에서 개소세 재연장을 선택했다는 부분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재계 한 관계자는 “1월 자동차 시장이 분명 개소세 인하 때와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연장을 한다는 건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며 “재연장이 끝나는 6월 이후에는 또 다시 판매량 급감이 뻔한데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만 높이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기집행은 이제 상반기 경기부양책의 단골메뉴로 떠올랐다. 매년 조기집행 규모도 늘고 있다. 조지집행이 늘어도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하반기 재정절벽을 몰고 오는 원인으로 ‘양날의 칼’이 됐다.
지난 2004년 이후 상반기 재정집행률이 50%를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딱 한 해 뿐이다.
실제로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이 분석한 조기집행 효과를 보면 재정 조기집행에 따른 순편익 최소 추정치는 연평균 5840억원에 불과했다. 2014년 분석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총수요 유발효과는 6150억원에 그쳤다. 2014년 국내총생산(GDP) 1485조원에 0.04%에 불과한 수치다.
박명호 조세재정연구원 장기재정전망센터장은 “재정 조기집행에 따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눈에 띌 정도의 큰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특히 ‘상저하고’라는 경제예측이 빗나갈 경우 경기안정을 도모하려는 재정 조기집행이 취지와 달리 경기 변동 폭을 더 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부양 필요하지만…부실한 대책으론 한계”
전문가들은 매년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 대책이 효과가 없음에도 같은 흐름으로 가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상반기에 조기집행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하반기 추경으로 메우는 방식인 것이다.
올해 1분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1분기 재정 조기집행률을 더 높이기로 한 것은 지난해 세금이 부동산거래 활성화와 담뱃세 인상 등으로 전년보다 잘 걷혔고 1분기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경기 상황을 보면 추가 부양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재정이 너무 빨리 소진되면 예상치 못한 충격이 왔을 때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재정 조기집행으로 경기를 떠받치다가 어려워지면 또 다시 ‘추가경정예산 편성’ 카드를 꺼내들 소지가 다분하다는 분석인 셈이다.
개소세 인하 역시 장기적인 소비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부양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기대치를 못미칠 경우 더 큰 소비절벽에 내몰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부양책은 대부분이 기존 대책의 재탕이거나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분기 소비 절벽을 막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자동차 개소세 인하의 경우 2분기 정도가 돼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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