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신희강 기자 = 2014년 4월 이후 2년 여만이다. 4일 오전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30대 그룹 간담회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 주형환 장관 취임 후 첫 만남이었다. 그동안 현 정부가 대기업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랜만의 만남이니 반가운 웃음소리와 힘을 내자는 격려의 인사가 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담회가 열린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 모습을 드러낸 40여명의 30대 그룹 참석자들의 자세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핵심은 기업 환경을 조속히 개선해 달라는 것, 특히 대기업이기 때문에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대적 차별적 조치들을 해소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를 주최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시장 수요 확대 정책만으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성장잠재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면서 정부에 과감한 규제 개혁과 창조경제 활성화를 요청했다.
이 부회장은 “정부가 돈을 풀고 잘 되길 기대하는 천수답식 정책보다 매마른 땅에 물길을 내고 농작물을 기르는 수리답식 정책으로 가야 한다”며 “거시정책에서 미시정책으로 경제기조를 전환하고 수요진작에서 공급 확대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30대 그룹 사장단은 에너지 분야의 경우 전력 소매판매 확대를 허용하고 에너지 신산업 시장의 확대를 위해 지원해달라고 건의했다. 산업 분야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활용을 확대하고 이란시장 진출을 지원해줄 것과 스마트 가전의 소비전력 기준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밖에 각 그룹별 사업의 애로 사항을 설명하고, 정부의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주 장관은 30대그룹의 건의 사안을 적극 수용하고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올해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전력시장 경쟁, 참여 확대를 추진하고 법률시행 전에도 고시 개정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공공기관에 대해 에너지 저장장치(ESS) 설치를 권고 중이며, 중장기적으로 의무화 방안을 검토하고 ESS 맞춤형 요금제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 가전 등 사물인터넷(IoT)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에너지 소비 전력 기준 적용에서 제외하고, 이란시장 진출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과 AIIB 등과의 공동사업 발굴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신산업 창출 및 주력산업 고도화 기술 개발에 내년까지 7조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자하고, 에너지 공기업을 통해 올해 6조4000억원을 에너지 신산업에 투입해 초기 시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주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월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이는 대외여건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기존 주력산업을 고도화하고 융·복합 신산업,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산업 포트폴리오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의 과감한 투자가 조기에 성과로 나타나도록 정책 역량을 모으겠다”며 “투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과감히 풀고 정부가 갖고 있는 각종 지원수단, 예산, 세제, 금융의 모든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주 장관은 참석자들에게 “수출 활력 회복과 투자 확대, 사업 재편에 30대 그룹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고, “앞으로 30대 그룹과 반기별, 주요 투자기업과는 매달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전경련은 이달 말 개최 예정인 산업부 장관 주재 주요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올해 30대 그룹 투자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화답했다.
한편, 주 장관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수출 대책에 대해 “기존 주력품목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수출) 낙폭을 줄이고 화장품이나 고급소비재, 농식품 등 새로운 대체 품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출 기업은 전체 300만개 중 9만2000개로 3.2%밖에 안되고 국경간 온라인 거래가 늘고 있지만 0.7%에 불과하다”며 “이런 부분을 대폭 늘려 수출 저변을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 현대자동차 정진행 사장, SK에너지 김준 사장, LG 하현회 사장, 롯데 소진세 사장, 포스코 최정우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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