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열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동대문구청장)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흔들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의미있는 행사가 개최됐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주관으로 '지방분권 개헌 대국민 토론회'가 마련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전국 기초자치단체 관계자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방분권 개헌법 개정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지방분권 개헌 대국민 토론회는 지난해 부산광역시를 시작으로 14개 시도를 순회하면서 열렸으며, 이번 서울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이번 대규모 토론회는 열악한 지방자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감하고 지방자치 발전에 있어 개헌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 데에는 중앙집권적인 현행 헌법 구조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자치 관련 현행 헌법조항은 단 두 개에 불과해 지방분권의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등 헌법이 지방의회의 입법권 및 지방정부의 행정권, 재정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자주적인 발전에 제약이 따른다.
지방자치제도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탄탄하게 발전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방분권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95년 부활해 어느덧 성년을 넘겼지만 '2할 자치'로 치부될 정도로 존립기반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면서 세제개편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첫 단추부터 잘못된 면이 있다. 그 결과 강남과 강북 지역간 세수격차가 갈수록 악화되고 복지예산 분담액 증가 등 전국적으로 지방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8월 정부가 지자체에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시달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지방교부세를 감액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로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권한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시행한 전국단위 복지사업이고 무상보육도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다시 말해 보편적 복지사업인 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는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국가사업에 대한 부담으로 주민을 위한 고유 업무를 추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위축된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고 중앙과 지방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 규정부터 구체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실질적 지방자치를 분명하게 보장하고 지방분권형 국가를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예컨대 헌법전문에 '분권'을 명시하고,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고 국민은 직접 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하여 권력을 행사한다'는 조항을 둬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양자의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지방자치가 자리잡고 국가발전의 초석이 마련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외교, 국방 등 중앙정부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중앙정부가 하고, 지방정부가 잘 하는 일은 지자체에 과감하게 그 권한을 이양하여 풍요로운 지방자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방분권과 관련한 권한 이양 문제와 지방재정 확충 문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관심과 입법기관인 국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의 미래는 지방자치의 성패에 달려있고 지방분권의 실현 없이는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 개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각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올해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지방분권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어 국민의 관심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지방분권 실현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지방분권 실현만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앞당길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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