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D-66일. 몸무게는 8개월 전에 비해 13kg이 늘었다. 태아 무게는 1.8kg이라는데 몸무게는 그에 12배 넘게 늘었다니 원통하기 그지없다.
자전거 한대의 무게를 몸에 짊어진 임신부에게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가혹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임신부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임신부 좌석이다.
잠실에서 강남역까지 2호선을 타고 이동하는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타면 임신부 좌석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하지만 출근길 임신부 좌석은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가 아닌 삶에 지친 직장인 누구나 남녀 구분없이 앉을 수 있는 공유 좌석이다.
이미 배는 남산처럼 부풀었지만 고맙게도(?) 두꺼운 겨울철 코트는 나의 굴곡진 'D 라인'을 감쪽같이 가려줘 자리 양보를 받는 일은 드물다.
서울지하철은 2013년부터 열차 내부 양쪽 끝 교통약자 지정석 외에 열차 한칸당 두 좌석씩 임신부 배려석을 설치했다.
또 올해부턴 서울 지하철 전체(1~8호선)에 임신부 배려석을 한눈에 알아보고 양보할 수 있도록 의자 전면과 바닦을 핑크색으로 디자인을 개선했다.
하지만 임신부들에게 임신부 배려석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림의 떡'이다.
하루 업무를 끝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 역시 마찬가지다.
'택시 타고 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하루 1만5000원을 웃도는 택시비를 내고 퇴근을 하는 것 역시 부담스럽기만 하다.
"아침 출퇴근길 지하철이 얼마나 번잡한데. 한 자리라도 줄여야지. 임산부 오면 자리 비켜주면 되지 굳이 자리 비워둘 필요있어?" 가까운 지인의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에 치이는 출퇴근 길이 임신부들에게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인에게 얘기한다.
네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너와 같은 공간에 있는 어느 임신부는 너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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