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워싱턴특파원 박요셉 기자 = 앤터닌 스칼리아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가 13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사망하자마자 미 정치권은 그의 후임 지명 문제로 논란이 거세다.
고 스칼리아 대법관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현재 미 연방 대법관 중 가장 보수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관 자리가 공석이 됨에 따라 “머지 않아”(in due time) 후임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재임 기간 동안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엘리나 케이건 등 두 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 지명에 이어 세번째 대법관 지명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후임 대법관 지명은 다음 대통령이 하도록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진보 성향 대법관이 추가될 경우 연방 대법원이 보수 우위에서 진보 우위로 바뀌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연방 대법관은 임기가 없는 종신직으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임명되면 보통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주요 정책과 직결된 중요한 결정을 계속하게 된다.
최근에는 이민개혁, 건강보험 등과 관련 미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굵직한 의제들이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그 방향이 최종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선거 개표결과의 최종 결정 역시 연방대법원이 담당했다.
이처럼 사법부에 의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고 한다.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법원 (한국, 유럽의 경우 헌법재판소)에 의한 사법적 결정을 통해 결정되어지는 현상이다.
현재 미국 등 각국 정치에서의 중요한 변화가 정당, 국회 등 이른바 ‘정치권’이 아닌 법원과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결정에서 보듯이 정치권에서의 갈등에 대한 최종 심판 기능을 헌법재판소가 맡는 일이 늘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갈등관계를 보여왔다. 최근 경향은 법원이 일반적으로 승자가 된다. 의회의 결정을 법원이 대리인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로 재판관들을 구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런 방식에 의해 재판관을 임명하고 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 시절 로버트 보크 연방대법관 후보자는 상원에서 자신에 대한 인준이 거부되자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결정’을 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사법기관이라기보다 정치적 기관이기 때문에 대법관 후보자는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으로 인식되어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들은 정치적이다. 그들의 정치성은 판결 속에 배어있다. 그러나 보크의 그런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의 경우 대법관 임명과정의 정치성은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모두들 그 과정에서의 정치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임명과정의 정치성은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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