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는 ‘한국 보험산업의 산증인’이자 ‘세계 보험인의 스승’으로 불린다. 1983년 국제보험회의(IIS)로부터 ‘세계보험대상’을 받았고, 1996년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교보문고의 슬로건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산이 자주했던 말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경험담에서 나온 말이다.
1917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난 대산은 어린시절 아버지와 형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바람에 늘 일제에 쫓겨 다녔고 병치레도 자주 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기회를 놓쳤다. 정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것은 천일독서(千日讀書) 뿐이었다.
그때 대산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카네기 전기’와 ‘헬렌 켈러’였다. 특히 ‘카네기 전기’를 읽으며 취직보다 장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경성(지금의 서울)에 가려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1936년 집을 나온 그는 경성을 거쳐 중국으로 향했다. 수년 후 베이징 자금성 동쪽에 곡물회사인 ‘북일공사’를 세웠다. 그즈음 민족시인 이육사와 만난 대산은 동포들을 귀국시키는데 자금을 보태는 등 독립운동을 도왔다.
30세가 되던 1946년 5월 귀국한 대산은 경제, 사회의 대혼란과 심각한 국민 생활의 빈곤과 방황과 갈등, 불안과 실의가 가득 찬 조국의 현실을 목격한다.
조국에 헌신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 대산은 전국의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 부존자원이 없는 조국이 나아갈 길은 오로지 인력을 자원화하는 ‘교육입국’만이 대안임을 깨닫는다. 또 조국의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민족자본을 형성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임을 통감했다.
이에 1958년 8월7일 ‘국민 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을 설립이념으로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세웠다. 그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을 키워내고, 민족자본을 형성해 경제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보험사업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당시 ‘보험’이라고 하면 모두가 ‘생명보험’만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 때 대산은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보험을 결합해 ‘교육보험’이라는 세계 유일의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했다.
교육보험은 사망시에만 돈을 받을 수 있었던 기존 보험과 달리, 교육을 받는 연령까지 생존하면 납입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대산은 “담뱃값만 절약해도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며 학교와 학부모를 찾아다니며 교육보험의 취지를 설명했다.
최초 2년간은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점점 입소문이 나며 대한교육보험은 창립 9년만에 업계 정상을 차지했다.
교육보험 덕택에 수많은 학생이 상급학교에 진학해 경제성장의 주역이 됐고, 학부모들이 맡긴 돈은 ‘민족자본’이 돼 도로, 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 구축에 사용됐다.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나 산세이도 서점보다 크고 좋은 서점을 만들고 싶었던 대산은 1981년 서울 광화문 사옥 지하 1층에 단일층 면적 세계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를 만들었다.
“놀고먹는 자는 사회의 도둑이다”“아니 벌써, 인생으로 바쁘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무엇인가 이 세상에 보람찬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값진 비석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생활철학을 가졌던 대산은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채우는 귀한 양식을 남기고 2003년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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