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출신의 이 전 총재는 부산상고를 나와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해 4·19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7대 국회 때 신민당 전국구 의원을 지내는 등 11대를 제외하고 14대까지 당선돼 7선 의원을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 때 민자당으로 합류하지 않고, 노무현, 홍사덕, 이철 등과 남아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 총재로 선출됐다. 이듬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당시 정계복귀 선언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과정에서 DJ와 결별했고, 15대 대선을 거치며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합류해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어 2002년 대선 때는 부산 상고 후배이자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 편에 섰지만,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맡지는 못했다. 이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정 의장은 21일 오후 빈소 조문 후 “4.19정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신념으로 정치를 해오신, 후배들에게는 사표가 되는 분"이라면서 “근자에 김영삼 전 대통령, 이만섭 전 국회의장, 이기택 전 총재 같이 정치권에서 좀 더 있어줘야 할 어른들이 필요한 시기에 떠나시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마지막 활동은 자서전 탈고였다. 별세 전날에도 밤늦게까지 자서전 ‘우행(牛 行·가칭)’ 탈고 작업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24일로 장지는 4.19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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