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⓺ 경쟁체제 포기한 중국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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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6-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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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에 문호 활짝 열어준 한국 철도산업 (하)

세계 1위 철도차량제조업체인 중국 중궈중처(中國中車·CRRC)가 생산하는 고속전철[사진=CRRC]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14년의 끝을 이틀 남긴 12월 30일, 중국은 글로벌 철도차량제조산업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을 발표한다.

중국 고속철도 제조산업의 ‘양대산맥’인 중궈난처(中國南車·CSR)와 중궈베이처(中國北車·CNR)가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CSR이 CNR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2015년 6월 출범한 통합법인의 이름은 ‘중궈중처(中國中車·CRRC)’다.

합병 전 두 회사는 2013년말 매출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이 CNR 14.6%, CSR 14.5%로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총 자산 규모 3000억 위안(한화 약 57조원), 매출액 20조원을 넘는 초대형 공룡기업은 글로벌 철도차량제조산업에서 29.1%에 달하는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다. 3위인 캐나다 봄바디어(8.5%), 4위 러시아의 TMH(6.6%) 5위 프랑스 알스톰(5.9%), 6위 스위스의 스테들러(4.0%), 7위 독일 지멘스(3.9%)의 점유율을 합쳐야 28.0%이니 CRRC의 위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8위, 9위에는 미국의 트리니티(3.2%)과 GE(3.2%)가 각각 올랐으며, 한국의 현대로템은 10위(2.4%)를 기록했다.

CSR와 CNR는 모두 1986년 설립된 중국철도기차차량총공사에 속해 있었으나 2000년 총공사가 철도부에서 분리된 후 중국 고속철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관계였다가 14년 만에 분가를 청산하고 다시 합쳤다. 합병 배경은 세계적인 고속철 건설 수주전에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합병 발표 당시 왕멍누(王夢恕) 중국공정원 원사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국제경쟁에 임하고 있다”면서 “두 기업 모두 프로젝트 수주에 집중하면 기술 진보에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저가 입찰로 인해 부패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 원사의 발언에서 철도차량제조산업의 ‘1국 1사 체제’는 당연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업계 종합>


◆정부 주도로 1개 업체 역량 몰아주기 가속화
CSR과 CNR이 급성장 한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철도산업에 투자하던 중국 정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회사는 정부의 폐쇄정책을 통해 자국 철도시장의 95%를 장악했다. 중국 내에서 철도 산업 성장이 둔화되자 두 회사는 해외진출을 본격화 한다. 규모의 사업이 가능한데다가 방대한 철도망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중국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철도차량 가격은 하락으로 이어졌다.

철도 선진국가들도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철도산업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철도차량산업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는 거래가 이뤄졌다.

당시 히타치는 이탈리아 최대 철도기업인 안살도브다 및 안살도STS를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히타치는 유럽시장 공략의 길을 확대했으며, 철도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알스톰도 GE에 에너지 사업을 매각하는 대신 GE의 철도신호사업을 가져왔다. 이번 거래의 배경에는 프랑스 정부가 있었다. 떼제베(TGV)로 대표되는 자국 철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사업 매각을 주도해 알스톰을 100% 철도기업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스테들러는 독일 보슬로 그룹의 철도차량(Transformation) 부문 스페인 공장을 인수해 기관차 사업을 강화했다. 보슬로 그룹은 향후 철도차량 부문을 모두 매각하고 궤도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자료: 업계종합>


◆개별 기업으론 역부족, 정부 지원 절실
철도차량산업은 수주산업이자 중앙 정부,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 소유 철도운영기관과 거래하는 정부와 기업간(B2G) 사업이다. 정부의 발주가 있어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글로벌 철도차량 시장 규모가 2013년 한화로 72조원 규모라고 하는데, 이는 삼성전자의 2014년 반도체 매출액 75조원보다 적고, 그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과 같은 금액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장이지만 철도차량은 수송기관 산업에서 개발하는 최첨단 기술이 모두 사용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이러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주처인 정부의 보호가 절실하다. 현지화, 각국 정부는 한쪽에서는 기술이전 요구 등을 통해 자국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경쟁보다는 1개 업체에 물량을 몰아줌으로써 지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철도 개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국 기업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B2G을 특색으로 하는 철도차량산업이 정부간(G2G)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22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동남아시아에 100억 달러(한화 약 11조원)의 인프라 관련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일본도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조해 아시아 인프라 확충에 1100억 달러(약 127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속도에 발맞춰 현재 3년 걸리는 공적개발원조(ODA) 수속절차를 중요 사업의 경우 최대 1년 6개월까지 단축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요사업에는 철도산업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국 철도차량을 선택한다면 철도망 및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금융을 일본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렇듯 글로벌 철도 수주전은 기업간 경쟁이 아닌 국가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수반이 나서서 해외 방문 때마다 ‘고속 철도 세일즈’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은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장면이다. 자국시장을 지키면서 해외시장을 공략하려는 경쟁국의 발 빠른 대응에 한국은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특히 철도차량 수주 및 수출 부진 탓을 기업에게만 돌리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정부부처에서 철도차량산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업계 관계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해외 철도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 국내 산업의 보호육성 대책을 강구해 제도화 되도록 다른 부처와 협의할 것이다. 다만,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장벽 만으로는 철도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국내기업이 스스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주인공인 여러분들이 역량을 키워주길 바란다.”

한 푼의 지원이라도 절실한 참석자들은 드러내놓고 반박을 못했단다. 하지만 속으로는 ‘보호를 해 주지 않아놓고서 무슨 역량을 키우라는 것이냐’라고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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