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 직장인 한씨(31)는 최근 몇 달간 국내 주가가 계속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이와 연계된 파생상품의 수익률이 -10%까지 추락, 큰 손실을 입었다. 4년 전 가입 당시 은행 직원은 증시가 상승기에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는 "수익률도 좋지 않은 데 매달 펀드에 돈을 넣을 때마다 수수료까지 나가 손실이 더해지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위험상품 상품 판매에만 적극적이고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이 수수료 수익 확대에 나서면서 펀드와 같이 원금 손실 위험이 큰 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와 맞물리면서 이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주가연계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등의 파생상품은 일단 판매만 되면 소비자들이 손실을 입더라도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은행들은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최근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ELS의 경우, 은행들은 증권사가 설계한 상품을 대신 팔았기 때문에 직접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은행별로 지난해 국민은행이 15조원으로 가장 많이 판매했고, 이어 신한은행(3조8366억원)·KEB하나은행(3조원)·우리은행(4442억원) 순으로 판매 규모가 컸다.
저금리로 예대마진의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펀드와 같이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고위험의 파생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은행 창구에서는 예·적금보다 파생상품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업점 개인 주요성과지표(KPI) 평가에서도 파생상품 실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해외주식 비과세 펀드 등 원금 손실 위험이 큰 상품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이같은 모습은 더욱 빈번해 질 전망이다.
문제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은 투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고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손실 위험을 사전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예·적금 금리가 1%대에 계속 머물고 있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은행의 말에 쉽게 현혹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사가 파생상품을 팔려면 고객 투자성향을 진단해 '공격형 고객'에게만 파생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금감원 조사 결과를 보면 은행의 경우 공격형 고객 비중이 17%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이 위험중립형(24.9%), 안정추구형(26.9%)이다.
하지만 '부적합상품거래확인서'라는 우회로를 통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부적합상품거래확인서는 '은행이 권유하지 않았고 고객 스스로 원해서 투자했다'는 확인서다. '안정추구형' 고객도 서명만 하면 파생상품에 투자 가능하다.
은행들의 자산관리 역량 또한 부족하다는 점도 소비자 피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은행별로 파생상품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이 각각 3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과거 펀드사태, 키코사태 등 은행들이 투자성 상품을 판매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은 적이 없다"면서 "은행들은 상품 판매하고 수수료만 챙기는 대형마트이기 때문에 정작 금융사들은 손실을 입지 않고 소비자들만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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