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다.
지난달 300억 원의 사재출연에 이어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책임을 떠 앉겠다는 뜻으로, 사실상 회사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백의종군’의 자세로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상선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오는 1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주식병합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등기이사 사임 안건 등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주총에서는 현 회장과 김명철 상무가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대신 김정범 전무, 김충현 상무가 선임 된다.
또한 현대상선은 7대 1 감자를 결정했다. 감자 방법은 액면가 5000원의 보통주 및 우선주 7주를 1주로 병합하는 형태다. 이에 보통주 1억9670만7656주와 기타주식 1114만7143주가 각 85.71%의 비율로 감자된다. 감자 전 자본금은 1조2124억원이지만 감자 후에는 1732억원으로 줄어든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5월 6일이다.
현대그룹측은 “현 회장이 현대상선의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마련한 고강도 추가 자구안이 보다 중립적인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통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본잠식률 50% 이상 상태가 2년 연속 발생할 경우 상장폐지 요건이 되기 때문에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식병합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결산결과 매출액 5조7665억원, 영업손실 2535억원을 기록했으며, 비지배 지분을 제외한 자본총계/자본금 비율이 36.8%로 50% 이상 자본잠식 상태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이미 고강도 추가 자구안을 사즉생의 각오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주총에서 주식병합안이 의결되어 재무건전성을 높인다면, 회사의 경영정상화는 더욱 가속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고 말했다.
감자 안건이 주총에서 의결될 경우 현대상선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만, 감자 후 채권단이 추가 출자를 결정하면 현 회장이 최대주주로 남아있기 어려워진다. 현대상선의 1대 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지분율 19.54%)이며,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 주주는 현 회장(8.7%)이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감자와 채권단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최대주주 지위를 채권단에 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대주주가 아닌 상황에서 현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채권단 입장에서도 구조조정을 진행중인 기업 등기이사에 오너가 있다면 일을 원활히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입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상선의 미래 향방은 다음달 초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회사채 투자자 등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회생계획안에 대해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KDB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이 사채권자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증자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해운업 특성상 법정관리는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채권자의 동의를 얻어 증자에 성공하면 회사의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을 가진 채권단은 정상화 시킨 다음 매각 절차를 밟을 것이기 때문에 현대상선이 현대의 품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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