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비즈]법원과 검찰, 재판과 수사 속도내기 나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6-03-10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이동재 기자 = '법원은 (재판을) 미뤄 조지고, 검찰은 (피의자를) 불러 조진다'
1980년대 후반, 법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떠돌던 말이다. 비속어가 섞여서 품격은 떨어지지만 당시 법원과 검찰에 대한 세간이 시선이 어떠했는가가 짧고 간단하게 잘 정리됐다는 평을 받았었다.

4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엔 재판이 별다른 까닭없이 자꾸 연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히 법관 인사이동이라도 있으면 재판 기일이 잡히기 까지는 또다시 공백이 있곤 했다. 송사에 휘말린 관련자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들이 빚어질수록 '송사 3년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조상들의 경고가 피부에 와 닿는다는 원망도 쏟아졌다.

검찰도 구금된 피의자를 청사로 불러들여 조사를 벌였다. 문제는 밤샘조사를 벌이는 일도 적지 않아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1991년 4월에는 뇌물을 준 혐의로 철야조사를 받은 기업체 대표가 수사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사실 유리창을 부수고 투신해 숨졌다. 검찰은 그동안 투신 방지를 위해 갖가지 묘수를 내왔지만 잊을만 하면 사고가 터지곤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법원의 계속되는 변화, 사법부 바라보는 시각 호의적으로 변할까   

지난 22일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법원장 강형주)이 법원 조직을 개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생활밀착형 분쟁' 재판의 소요 시간을 줄이기 위해 4개의 전담 재판부를 신설한 부분은 서민들을 배려하겠다는 법원의 내심이 표출 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날 신설된 민사29단독, 민사34단독, 민사 71단독, 민사95단독 등 4개 재판부는 '생활형 분쟁 집중처리부'다. 이들 재판부는 건물인도, 임대차보증금반환, 유익비반환, 손해배상 등의 생활밀착형 민사단독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치됐다. 생활밀착형 분쟁에는 대여금, 임금, 신용카드 사용대금, 자동차사고 손해배상, 임대차 보증금 사건 등도 포함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만  1만1825건이 접수됐을 정도로 갈등이 내재된 사안들은 많다.

법원은 앞으로 비교적 다툼의 여지가 적고 단순한 형태의 사건은 소장 송달 후 2∼3주 안에 첫 재판을 열기로 했다. 또 첫 재판 후 2주일 내에 선고, 소송 당사자들의 대기 기일을 줄이도록 방침을 정했다.

현재 전국 법원의 민사단독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161일이다. 하지만 향후에는 접수부터 선고까지의 절차가 5~6개월 정도에서 빠르면 1개월로 줄어들게 된다.

법원은 "생계형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해 국민이 하루라도 빨리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아동학대 사건 재판을 전담하는 재판부도 설치됐다. 단독 재판부, 합의 재판부, 항소 재판부 한 곳씩이 전담으로 지정됐다. 가정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에서 아동학대 사건만 전담으로 하는 단독·항소·합의 재판부를 모두 만든 것은 서울중앙지법이 처음이다. 지난해 6월 인천지법이 아동학대 사건 전담 단독 재판부를 두기는 했지만 죄질이 무거운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합의부나 2심을 맡는 항소부는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전담 판사들이 아동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되면 기존 관행에 대한 성찰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 상황이 반영될 겅우 기존보다 개선된 재판 진행이나 처벌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 측은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현실을 고려했다"며 "아동들의 권익을 강하게 보호할 필요가 크다는 점을 반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설된 집중처리 재판부의 신속한 선고, 다른 재판부에도 영향 줄 듯  

서울중앙지법 민사71단독 김영수 판사는 지난 3일 공동주택 1층의 A씨와 2층의 B씨가 3층에 사는 C씨를 상대로 "윗집에서 물이 누수돼 피해를 봤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아래층에 사는 주민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김 판사는 "C씨는 A씨에게 695만원, B씨에게 188만원을 지급하라"며 "욕실 바닥과 욕조 주위의 방수공사를 이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씨와 B씨, C씨는 서울 서초구 5층짜리 공동주택 주민들로 같은 라인 2층과 1층, 3층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A씨와 B씨는 집 천장이 물이 젖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자 3층 C씨의 집에서 누수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아래층 주민들은 C씨에게 적절한 공사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C씨는 공동배관을 비롯한 공용부분에서 하자가 있기 때문에 물이 새는 것이라며 A씨와 B씨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래층 주민들은 결국 C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김 판사는 "전문가의 감정 결과, 2층 A씨 집에 누수가 발생하고 1층 B씨 집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C씨 집 욕실 바닥과 배수구 등의 방수불량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C씨는 방수불량 등의 하자로 인한 A씨와 B씨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C씨 집의 방수불량으로 A씨와 B씨 집 천정에 물이 샌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공사를 하지 않으면 누수가 계속돼 두 사람의 소유권 행사가 방해되므로, C씨에 대해 방수공사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단도 내렸다.

민사71단독 재판부는 지난 2월22일 민사29단독, 민사34단독, 민사95단독 재판부와 함께 '생활형 분쟁 집중처리부'로 신설된 지 11일만에 이같은 선고를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생활형 다툼일 수록 빠른 시간내에 재판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한 법원의 조직 개편이 거둔 결과물로 보인다"라며 "4개의 단독 재판부가 집중처리를 활성화 할 경우 다른 재판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검찰도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 처리 시한 단축화 나서.

검찰의 '제2인자들'로 불리는 일선 고등검사장 4명이 직접 팀장을 맡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급증하는 고소·고발 사건 처리와 대응책을 마련키로 했다. 서울고검장을 제외한 부산·대전·대구·광주고검장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서울중앙법원이 사건의 접수와 재판, 선고까지 걸리는 시일을 대폭 줄이기 위해 최근에 생활형 집중재판부를 가동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모양새다.

현재 접수되는 고소·고발 사건은 연간 30만건이 넘는다. 문제는 이같은 사건들의 80% 이상이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이다. '억울하니까 일단 고소·고발부터 하고 보자'는 심리가 빚어내는 씁쓰레하고도 기형적인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이 같은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기 등 재산관련 범죄 사건은 민사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사법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행정력과 수사력이 낭비되고 있는 만큼 고소·고발 남발을 줄이는 방안 마련에 집중할 방침이다.  

또한 조정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등 좀더 효율적인 다른 해결 방안을 연구하기로 했다. 현재 문답 형식으로 정형화된 조서의 형태를 서술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각종 기록에 영상녹화나 녹음 등의 형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구체화할 계획이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간의 모욕죄 관련 사건이 급증하고 있음을 중시, 악의적일 경우 엄정 처벌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양형을 비롯한 사건처리기준 수립, 참고인 강제소환제 도입, 아동·여성 등 사회적 약자 보호 방안 등 대검 각 부서에서 연구할 70여개 핵심과제도 동시에 추진된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최근 들면서 법원과 검찰이 생활형 분쟁 재판이나 무고성 고소·고발 사건 등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코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단 반길만한 일"이라며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의 재판 청구나 고소·고발을 국민 스스로가 자제해야 개인은 물론 국가적인 시간, 경제적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과 검찰이 국민들의 불편한 점을 세심히 살펴 꾸준히 제도 개선을 한다면 법조계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따뜻하게 변할 수도 있을듯 하다. '유전무죄 유전무죄'라는 원망석인 글귀가 시중에 자주 등장하지 않도록 '사법 정의'가 커지기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