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하나가 월미도인데 지금도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1920년대 월미도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해수탕이 있어 ‘인천은 몰라도 월미도는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관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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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월미도 조탕[1]](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6/03/14/20160314084602459032.jpg)
1920년대 월미도 조탕[1]
조탕(潮湯)이라 불리는 해수탕은 일반적인 바닷물이 아니라, 지하 암반층에서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이를 끓여 목욕물로 사용했는데, 이 암반수에는 각종 미네랄과 염화나트륨 등이 포함돼 있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미도가 관광지가 된 것은 인천항 갑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1918년 인천 내항에 도크(dock)를 건설하고 한강에서 흘러드는 급한 물살을 막기 위해 북성지구에서 약 1㎞에 달하는 제방을 쌓았다. 이 제방이 놓인 후 철도국은 소형 해수풀과 조탕을 만들고 이곳을 임해유원지로 조성하면서 월미도 전역을 풍치지구로 지정해 관광지로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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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조탕에는 숙박과 휴게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서구식 무대장치가 마련된 연무장도 있어 당시로서는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휴양시설이었다. 원산 송도원, 부산 해운대 등의 잘 알려진 휴양지를 제치고 월미도는 당대 최고의 명소였다.
이후에 민간업체가 경영하면서 해변가에 대형 풀이 증설되고, 밀물 때에는 마치 바다에 뜬 모양의 용궁각과 3층 목조건물의 빈(濱)호텔이 건립되어 많은 행락객이 찾기도 했다. 당시 붉은 지붕과 서구식 외관을 자랑하던 조탕 건물, 그리고 매혹적인 불빛을 선사하는 월미도의 야경은 놓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광복 후, 월미도관광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옛 명성을 되찾고자 했지만, 별 성과를 보지 못한 채 6·25전쟁으로 공터로 변했다가 모래부두와 공장 등이 세워지자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워졌다. 1980년대 말에 월미도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해군기지로 사용되던 곳은 공원으로 단장돼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지금, 옛 조탕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월미문화의 거리에 해수 족욕탕이 조성돼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이 있었던 월미도가 과거 전국 최고의 명소라는 명성이 현재에도 이어져 수도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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