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88년만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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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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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아바나를 '치명적인 중독성을 지닌 도시'로 묘사해 필자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던 분은 '라틴화첩기행'을 쓴 김병종 화백이다.

'불온한 여인처럼 마초 이미지의 사내들을 향해 손짓하는 곳'이라고 하니, 미셸 오바마 여사가 두 딸을 데리고 쿠바에 함께 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오바마 대통령은 1928년의 캐빈 쿨리지 이후, 쿠바 땅을 밟은 두번째 미국 대통령이 됐다. 무려 88년만이다. 그 오랜 세월, 두 나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미국과 쿠바의 역사는 18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이후,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는 미국 휘하로 들어갔다.

1903년 쿠바의 관타나모에 미 해군기지가 설치됐고,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미국 자본이 장악했다.

헤밍웨이는 1932년부터 쿠바에 30여년간 머물며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노인과 바다'를 썼다.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였던 쿠바가 세계무대에서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 정부를 수립한 이후부터다.

쿠바를 사랑했던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쫓겨났고, 1961년 7월 자살하고 말았다.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는 단절됐다.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이 있었고, 1962년 10월 쿠바는 소련의 미사일을 들여오려다 실패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고, 미국은 전면적인 경제봉쇄로 쿠바를 몰아붙였다. 고난의 행군이 계속됐다. 이제 두 나라는 경제 제재의 해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오랫동안 미국에 두통거리였던 이란과 쿠바, 두가지 숙제를 해결한 이후 퇴임하려고 행보를 빨리하고 있다. 

퇴임 이후 유엔(UN) 사무총장을 맡고 싶어하는 버락 오바마가 북미관계까지 중재하며 한반도 평화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몇년후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다.

오바마의 미래 청사진이 실현될지 미지수지만, 지금 미국과 쿠바는 오랜기간 헤어진 연인처럼 바싹 다가앉아 있다.

작년에 쿠바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은 313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17.6% 증가했다. 이중 미국인은 14만7000명으로, 전년(6만2000명)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2014년 미국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한 뒤, 미국인의 쿠바방문 제한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 쿠바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0년 3000여명, 2014년 5000여명, 2015년 7500여명으로 숫자는 적지만, 증가 속도는 빠르다.

쿠바와 한국의 교역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2005년 코트라(KOTRA)의 아바나 무역관이 개설되며 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쿠바 수출액은 2005년 4000만 달러 수준에서 2008년에는 3억4000만 달러로 늘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발전기 납품이 종료되며, 다시 2013년 5000만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향후 새로운 수출시장으로서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특히 쿠바내 한류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 2013년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최근 케이팝(K-Pop)으로 확산되며 한국에 대한 현지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아쉬운 것은 아직 쿠바와 한국이 미수교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미국, 이스라엘, 한국 세 나라만 쿠바와 미수교 상태인데, 이제 둘만 남았다.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으니, 쿠바와의 수교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아바나의 ‘호텔 나시오날’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흥겨운 재즈 음악을 들으며 데킬라 한잔, 모히토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싶다.

만년의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아바나의 ‘까페 프로리디타’에서 물라토 여인들과 열정적인 라틴댄스를 즐기고 싶다. 김병종 화백이 느꼈던 그 불온한 분위기를 필자도 직접 느끼고 싶다.

아쉬운 것은 북한이다. 쿠바도 문을 열고 미국과 교류를 시작하는데 북한은 아직 그대로다. 최근에는 좁은 문을 더 닫고 있다.

우리가 3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올리며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생산국이 된 것은 과감하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교육에 투자하고 과학기술을 장려한 덕분이다.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화의 길로 걸어 나갔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포용적 성장과 개방이 정답이다. 쿠바도 그 길로 가고 있다. 오바마와 카스트로의 88년만의 악수가 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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