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이정주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4·13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대선), 2018년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등이 잇따라 열린다. 특히 차기 총선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산물인 ‘87년 체제’, 외환위기를 초래한 ‘97년 체제’ 이후 새로운 질서를 가늠하는 이른바 ‘정초(定礎) 선거’가 될 전망이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민주화 시대의 역사 재평가작업과 맞물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키는 국민이 쥐고 있다. <편집자 주>
“정쟁에 빠진 20대 총선의 구원투수를 찾아라.” 공천 내전에 빠진 20대 총선이 위기를 맞았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 전환을 위한 정책은 간데없이 ‘진박(진실한 박근혜) 마케팅’,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등의 퇴행적 정치수사만 난무한다.
특히 4·13 국회의원 총선 후보자 등록을 하루 앞둔 23일 현재 총선 공약집조차 내놓지 않은 정당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새누리당은 ‘격차 해소’, 더불어민주당은 ‘포용적 성장’, 국민의당은 ‘공정 성장’ 등의 경제프레임을 각각 앞세웠지만, 사실상 정치적 레토릭(rhetoric)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큰 셈이다. 각 당의 정책이 ‘희망고문’이나 ‘매표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與, 강봉균發 공약수정 불가피
여야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야 총선 공약의 문제점은 크게 △늑장 대응 △공약 재탕 등 차별화 없는 공약 △구체적 담론 없는 백화점식 정책 나열 △소요예산을 비롯한 예산조달방안, 공약가계부 3무(三無) 등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맨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공동 선거대책위원회에 임명하며 본격적인 경제정책 행보에 나섰다. 강 전 장관이 ‘경제민주화’ 상징인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대항마로 영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봉균발(發) 공약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강 전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거를 치를 때마다 여러 가지 인기 있는 말을 쏟아내는 것은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 끼친다”며 “(이것을) 내가 바로 잡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다”고 대대적인 공약 수정을 예고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 21일 ‘일자리 확대·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국민 안전’ 등의 3대 코드를 골자로 하는 20대 총선 공약집을 공개했다.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각론에선 △청년 희망 아카데미 3년 내 전국 16개 시·도로 확대(2030청년) △공공기관 중심으로 근로시간 저축휴가제 등 유연근무제 확대(3040여성) △노인 일자리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6070실버) △사회적 거래소 설립(사회적약자)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의 부분보증비율 현행 85%에서 90%로 확대(농·어업인) △7년 이상 자영업자 소득세 감면 확대(소상공인) 등으로 세분화했다.
◆野공약집 ‘無’…숨어버린 재정계획案
문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부정책(청년 희망 아카데미)의 재탕적 성격이 강한 데다가 중장기적 플랫폼 결여, 예컨대 사회적 거래소 설립의 경우 설립 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어떤 방식으로 선진국 등의 상장형·유통형 거래소로 발전시킬지 등이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차별화된 공약 없이 백화점식 정책 나열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다. ‘김종인 비대위’가 이날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새누리당의 ‘강봉균 선대위’와의 본격적인 경제정책 경쟁을 위한 발판은 마련했지만, 두 당 모두 20대 총선 공약집조차 나오지 않았다. 두 당 모두 이르면 28일께 공약집을 배포할 예정이다.
백화점식 정책 나열도 두 당이 안고 있는 한계다. 더민주는 총선공약의 핵심 코드인 ‘비정규직 차별 해소’의 각론으로 △근로기준법상 차별 금지 사유에 고용형태 추가 △비정규직 사유제한제 도입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 △비정규직 구직수당제 도입 등을 제시했으나, 그간 야권진영에서 제기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종인 표’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도 논란거리다. 더민주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기공공임대주택 및 보육시설 등 공공인프라 확충사업에 국민연금기금을 투자하는 정책”이라며 “새누리당도 임대주택법안을 냈지만, 거기에는 재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개혁을 통한 기존의 국가재정으로 할 수 있다는 점과 위험 대비 수익성의 효율성 분석 없이 섣불리 정치권이 국민연금재정에 개입해 연금의 5대 원칙인 ‘독립성·안정성·투명성·책임성·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당도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는 일명 ‘컴백홈법’을 창당 1호 법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어느 당이든 재원 확보가 핵심”이라며 “공천 마무리 후 다음 주부터 경제 프레임 대결이 시작될 텐데, 비관적이다. 늦은 감이 있다. 끝까지 정치가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이날 “지난 3일 각 당에 총선 공약의 3대 분야 15개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요청했지만, 재정계획 등 공약가계부도 없고 (일부 정당은 공약이) 언제 확정될지 답변조차 못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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