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윤정훈 기자 =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 착오적인 정치보복입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결국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서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행보를 택했다.
유 의원의 탈당행은 사실상 당내 친박(친박근혜)계의 압박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장 대구를 비롯해 수도권 지역에서 우려했던 '역풍'이 실제로 나타날 지 관심이 모아진다.
◆ "정의가 짓밟힌 데 분노…정체성 시비 핑계에 불과"
23일 밤 10시 50분께 유 의원은 대구 동구 용계동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말하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은 "공천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 이건 정의가 아니다"라며 "정의가 짓밟힌 데 대해 저는 분노한다"라고 당에 대해 날 선 비판으로 회견을 시작했다.
지난해 유 의원은 원내대표를 맡았을 당시, 국회 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기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당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그를 '배신의 정치'인이란 낙인을 찍으면서 결국 5개월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끝내 당을 떠나게 됐다.
당 정체성 논란이 발목을 잡은 데 대해 그는 "2011년 전대 출마선언 그리고 작년 4월 국회 대표연설을 다시 읽어봤다"면서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오히려 당의 정강정책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추구하는 저의 노선과 가치가 옳았다고 말해주고 있다"면서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한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쫒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고 강조했다.
특히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진실한 친박) 비박(비박근혜)이라는 편가르기만 있었다"면서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유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당시 언급했던 헌법 조항을 다시 한 번 인용했다. 당시 그는 '헌법 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었다.
◆ "권력이 버려도 국민만 볼 것"…수도권 역풍, 비박연대 출범에 주목
이날 그는 헌법 1조 2항을 꺼냈다.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다. 유 의원은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면서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한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유 의원은 이번 공천에서 우수수 탈락한 그의 측근 인사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류성걸(대구 동갑), 김희국(대구 중구남구), 조해진(경남 밀양함안군), 이종훈(경기 성남 분당갑), 민현주(비례대표) 의원 등 현역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는 "저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 기회 조차 박탈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면 제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제가 이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가서 보수 개혁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당초 친박계는 유 의원의 자진 탈당을 꾸준히 압박해왔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자진탈당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서로간에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번 유 의원의 탈당으로 친박계의 '최대 골칫덩이 찍어내기'는 성공했다.
다만 부동층과 중도층이 다수 포진해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 민심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당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앞서 잘려나간 측근 인사들과의 '비박연대' 출범 가능성도 관측된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유 의원이 섣불리 연대 카드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맞서는 분위기를 만들면 오히려 총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면서 "지역구가 대구인만큼, 해당 지역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강력한 결집을 불러일으키려면 유 의원의 홀로서기가 주효한 전략"이라고 내다봤다. 좁은 지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그는 "결국 이번 사태의 뿌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시작한 정적 제거"라며 "그 카드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기 목을 치게 됐다"고 평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