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시중은행에 다니는 은행원 윤모씨(31)는 이달 초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의무 할당량을 채우느라 친척, 친구 등 지인들에게 잇따라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다. 1인당 최소 100계좌씩 유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가입액 1만원짜리 '깡통계좌' 지적이 나오자 금액 할당까지 정해졌다. 계좌 유치뿐만 아니라 가입 금액까지 신경써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계좌이동제 3단계 시행에 이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ISA 판매를 시작하면서 은행원들이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일별 자동이체 변경 00건, 개인당 ISA 신규 계좌 00개 유치' 등 의무 할당량으로 인해 하루하루 영업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은행 창구와 인터넷뱅킹을 통해 자동이체 조회·해지·변경이 가능한 계좌이동제 3단계가 시행되면서 주거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창구 직원들이 더욱 분주해졌다. 일부 지점에서는 하루에 몇 건 이상 자동이체 계좌를 끌어오라는 지시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ISA까지 출시되면서 은행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직원들에게 많게는 100개 이상의 계좌를 유치하도록 할당량을 내려보냈다. 특히 은행별로 ISA 실적을 내부 성과평가기준(KPI)에 반영키로 하면서 은행원들이 더욱 절박해진 눈치다.
윤씨는 "계좌이동제, ISA 등 올해 새롭게 시행되는 정책으로 인해 업무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면서 "최근 1~2달은 오후 4시에 지점이 문을 닫아도 밤 늦게까지 남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날이 대부분이고 주말도 편히 쉬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에서 성과주의 문화 확산을 추진하고 있어 은행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체계가 호봉제에서 연봉게로 바뀌고, 기본급이 줄고 성과급 비중이 높아지게 될 경우 개인 실적 평가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차라리 희망퇴직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이 더 낫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면 그래도 버티자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는 퇴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늘었다"면서 "특히 젊은 직원들 중에는 희망퇴직을 바라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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