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原) 두산’ 시대 개막, 박정원 회장 “‘청년두산’ 정신 재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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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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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8일 서울 강동구 길동 DLI연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두산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너는 장손이니까, 동생들이 때려도 참고, 꼬집어도 참아야 한다.”

연강(蓮崗) 박두병 두산그룹 선대회장은 장손인 박정원에게 어릴 때부터 맏이의 관용과 책임감을 일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분가한 장자 박용곤의 2남 1녀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차 집이 좁아지자 손주들은 연지동 연강 자택에 와서 자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레 할아버지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어린 손주들에게도 연강은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연강은 한식이나 추석 때 일가족이 경기도 광주시 탄벌리 선영에 성묘를 가면 자식들 이외에도 장손인 박정원 만은 꼭 데리고 가 산 너머 선대의 선영까지 참배시키며 자식 된 도리로서 의무와 효를 가르쳤다. 별세를 1년도 채 안 남겨둔 1972년 겨울, 폐암 수술을 받은 직후 편찮은 몸을 눕히고 있던 연강은 문병 온 당시 나이 10살 장손에게 “정원아, 너 산소 가는 날이 언제인 줄 아느냐?”며, 먼 훗날 집안과 두산그룹을 이끌어갈 운명을 타고난 손자에 대한 안쓰러움을 전하기도 했다. 박정원의 경영수업은 이미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承→ 秉 → 容 이어 ‘原’의 시대로
두산그룹 오너 일가 4세인 박정원 회장이 28일 서울 강동구 길동 DLI연강원에서 열린 취임식을 갖고 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했다.

원래 밀양 박 씨 부마공파(駙馬公派)가의 항렬은 승(承, 받들 승) - 병(秉, 잡을 병) - 용(容, 얼굴 용) 밑에 원(遠, 멀 원)자였다. 그러나 매헌은 1962년 장손이 태어나자 '遠'자는 글자가 어려워 아이들이 쓰기 힘들다며 원(原, 근원 원)자로 고쳤다. 손자들이 ‘原’자 돌림을 쓴 계기다.

하지만 반드시 한자를 쓰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름의 풀이와 운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당시 세대의 풍습으로 미뤄볼 때 향후 손주들의 이름에 ‘멀다’는 뜻의 ‘遠’자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근원’이라는 뜻의 ‘原’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두산그룹의 명맥이 이어진다면, 그룹과 계열사를 이끌어갈 손주들이 그 때 즈음 두산이 출현한 근원을 생각하며 미래를 그려보라는 바람이 담겼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그룹은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오너 4세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박정원 회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새로운 세대로 넘어왔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윗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해라”, “남의 잘못을 비웃지 말고 거울삼아 깨우쳐라”,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행실을 바로 가지고 남의 눈에는 유난스럽게 띄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심해라”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연강의 장자이자 아버지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삶의 태도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

대신 120년 전 두산그룹이 출범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청년정신’의 재무장을 강조했다. “120년 역사의 배경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청년두산’ 정신이 있다. 이 ‘청년두산’ 정신으로 ‘또 다른 100년의 성장’을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또한 박정원 회장 스스로 현장에서는 기회가 보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자세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적인 경영을 두산의 색깔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영광과 시련의 3세대, 박용만 회장의 아름다운 마무리
두산그룹은 1세대인 매헌(梅軒) 박승직 창업자가 ‘박승직상점’을 통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민족자본의 기틀을 세웠다. 2세대인 연강은 OB맥주 불하 및 각종 기업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그룹의 체제를 완성했고, 그 자신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연강은 국내 최초로 전문 경영인 체제(정수창 회장 역임)를 도입해 소유와 자본의 분리를 실천했다.

3세대는 박용곤-박용오-박용성-박용만 등 4명의 형제가 회장을 지내며 다수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경공업 위주의 사업 구조를 중공업, 즉 인프라지원서비스(ISB)으로 탈바꿈시켰으며, 4세대로의 평화로운 경영권 이양에 성공했다. 현재의 두산그룹 성장에 3세대들이 이뤄낸 성과는 매우 크다. 하지만 낙동강 페놀수지 유출사건, “형제간에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 연강의 가르침을 완벽히 따르지 못한 채 벌어진 분란 등으로 두차례에 걸쳐 형제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상당 부분 빛을 발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를 누구보다 곁에서 목격한 뒤 4세대 시대의 문을 연 박정원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오너 일가가 모두 모여 그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체제로 있다. 이는 박정원 회장이 홀로서기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시켜줄 것이다. 또한 그룹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동생들도 박정원 회장을 중심으로 단결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여 새로운 두산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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